▲나만의 조합을 찾아가는 삶무수한 꽃더미 속에서 나만의 것을 찾아가는 게 삶이 아닐까.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조합을 찾아,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나아가는게 삶일 것이다.
김현진
성공한 삶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내게 성공한 삶이란, 자신에게 밀착된 삶이다. 몸에 잘 맞게 재단된 옷을 입듯 자연스럽게 나를 감싸는 삶. 어느 한 부분도 몸에서 어긋나거나 헛돌지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조이거나 과장되어 보이는 부분도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체형과 사이즈를 제대로 알고 그에 맞는 옷을 찾는 게 중요하다.
처음엔 주어진 옷을 반항없이 입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입혀주는 옷을,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는 옷을 따라서 입었다. 주어진 옷을 입는데 익숙해 벗을 수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모두 그 옷을 입고 있는데 나만 입지 않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한동안 입고 있던 옷이 내겐 맞지 않고, 숨통을 조인다는 걸 알게 되어도 벗을 수 없었던 건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온몸을 조이는 옷에 익숙해지려 긴 시간 애를 써보기도 했다. 어떤 순간에는 성공적으로 거기에 걸맞는 사람이 되었다고 느꼈다. 하지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 옷을 입은 채로는 일어설 수가 없었다. 일어서려면 옷을 벗어야 했다. 용기를 내야 했다. 성장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입고 있던 옷을 벗고 내게 맞는 옷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마흔 중반을 향해가고 있다. 여전히 내 옷이 불편하다. 육아와 가사를 도맡아 해야하는 '엄마'와 '아내'라는 옷. 겉보기엔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는데 아니었다. 다시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고, 이 상태로는 일어설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있다. 옷을 벗어야 하는데, 그것마저 쉽지 않다. 옷을 벗는 법부터 천천히 다시 배우고 있다. 다만 조금 덤덤하게 그걸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모든 게 변할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상황과 관계도, 사람들도, 나 자신도. 삶의 유동성은 우리를 힘겹게 하지만, 그 가능성이 희망이다. 변한다는 건 그래서 축복이다. 자신의 결핍을 목도하는 일은 아프지만 빛은 거기서 나온다. 넘어진 나를 바라보고, 결핍을 알아채는 것은 길들여지지 않은 백마가 웅크리고 앉아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 일이다. 울음의 이유와 방향을 감지해야 다시 달리게 할 수도 있다.
내게 맞는 옷 찾기는 어느 시기에 완결되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그 일이 조금 더 일찍 일어나고, 수월하게 끝나기도 할테다. 하지만 내겐 평생이 걸리는 일이 아닐까 예감한다. 그래서 다행스럽다. 혹시 잘못 고르더라도 다시 고를 수 있어서,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여러 번 고를 기회가 있어서. 바꿔 입을 옷이 세상에 가득하다고 믿는다. 내가 찾으려 하는 한 어딘가에 그 옷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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