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뒤의 카드
박도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의 하나인 <리어왕>은 믿었던 두 큰딸에게 배신당하고 막내딸의 진심을 뒤늦게 깨닫는다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 구미 금오산을 바라보고 자랐던 나는 젊은 날부터 은퇴하기까지 30여 년간 서울 북한산을 날마다 바라보며 한 집에서만 살았다. 늘그막에는 원주 치악산을 병풍처럼 두른 채 내 집이 몇 평짜리인 줄도 모르고 자그마한 아파트에서 '박도글방'이라는 현판을 걸어두고 살고 있다.
흔히들 "청춘은 희망에 살고 백발은 추억에 산다"고 한다. 하지만 이즈음 나는 백발을 지나 삭발로 추억에 젖어 살기보다 이생에서 지은 잘못이 많아 참회와 후회를 되뇌면서 살고 있다. 때때로 내 지나온 인생을 모조리 지우고 싶지만 그래도 한 가지 잘 했다고 자위하는 건 평생 교사 생활을 한 점이다.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꼬박 33년 학교라는 울타리 속에서 줄곧 평교사로 지냈다. 첫해부터 은퇴하던 해까지 주당 20시간 이상 단 한 번의 특혜도 없이 목이 아프도록 수업을 한 못난이였다. 젊은 날 월급을 모아 북한산 기슭에 차도 닿지 않는 곳에다 문패를 달았다.
그 뒤 다른 곳으로 이사할 줄도 모른 채 아파트 청약 한 번 하지 않았다. 지금은 물러나 원주 치악산 밑 한적한 외진 곳 좁은 아파트에 '박도글방'을 차려두고 이 시대에 맞지 않고, 책도 팔리지 않는 빨치산 이야기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 같은 얘기나 쓰고 있다.
공자님의 말씀을 담은 <논어> 첫 부분이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매우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왔다면 매우 즐겁지 않겠는가? …"
나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있어 이따금 내가 가는 곳마다 그들이 찾아주곤 한다. 이즈음에는 제자들이 지구촌 곳곳에 흩어져 살기에 뉴욕 허드슨 강변에서도, 로스앤젤레스 해변에서도, 워싱턴 D. C. 인근 락빌에서도 초대해 줘서 그때마다 늙은 훈장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그뿐 아니라 일본의 얼음집에서도, 금강산 삼일포에서도 만났다. "요즘도 이런 사제지간이 있느냐?"는 찬사를 일본인도, 북한고위간부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