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놀이터.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과 모래가 있는 곳으로 매일 나간다.
홍정희
아니면 마트행이다. 그는 원래 마트 가기를 좋아했다. 구체적으로는 마트에서 과자 구경하기다. 그의 아내는 마트 가기를 좋아하지 않아 과자 쇼핑의 기회가 좀처럼 오기 힘든데 아들을 데리고 둘이 다니니 이런 건 참 좋다. 휴직하니 이런 소소함에서 일희를 느낀다.
점심시간이다. 예정대로라면 집에 가서 밥 먹고 아들이 낮잠 자면 옆에 누워 핸드폰이나 뚱땅거리며 재충전하는 시간인데 어찌 된 일인지 그가 육아를 전담하게 된 시기부터 아들은 낮잠을 건너뛰거나 이동하는 차 안에서 20~30분 자고 일어나는 날이 많아졌다. 소중한 낮잠 시간이 망하면 다시 일비의 시간이 찾아온다.
빨래 바구니에 들어가 "더 높이, 더 세게"를 외치는 아들의 요구에 적절히 부응하며 흔들어 주고, 붕붕카 타고 종횡무진할 때는 적당히 형식적인 추임새로 잘한다 잘한다 격려하며, 그러다 아빠 등에 올라타면 네 발로 이 방 저 방 순찰 갔다 오고, 음악 틀고 춤도 추다가, 간식 먹이고, 책 읽어주고, 짬 나면 빨래도 해놓다 보면 아내가 퇴근할 시간이다. 엄마 마중 나가자고 아들을 꼬셔 쓰레기 분리수거를 들고 나가면 아내와 딱 마주친다. 살았다.
발로 툭툭 쳐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집에 온 아내가 아이와 함께 목욕하러 들어가면 이때가 유일한 혼자만의 시간이다. 꿀 같은 시간은 금세 지나가는 법. 저녁 먹고 아내와 가위바위보로 저녁 설거지 당번을 정하지만 8할은 그가 당첨이다. 어쩌면 저렇게 가위바위보를 못 할 수 있단 말인가. 낮은 싱크대에서 하루 세끼 설거지를 하다 보면 마지막 저녁 설거지 즈음엔 다시 일비가 올라온다. 나쁜 감정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지 않아 아이를 재우고 아내랑 둘이 맥주라도 한잔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소등한다. 아이는 어둠 속에서 재잘거리다 이내 잠든다. 행여 아이가 깰라 조심스럽게 발로 툭툭 아내의 발을 친다. 벌써 잠든 아내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왜! 왜!" 한다. 그래도 한 번 더 꼬셔보고자 아내 옆으로 가서 살짝 안아본다. 잠든 줄 알았던 아이가 "아빠, 아빠 자리로 가요" 한다. 그의 자리, 아내와 아들의 발밑, 그의 자리로 돌아가 눕는다.
일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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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그리움을 얘기하는 국어 교사로, 그림책 읽어주는 엄마로, 자연 가까이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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