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써준 답장
진혜련
지난 스승의 날 아이들에게 받은 편지에는 유독 시편지 이야기가 많았다. 마음이 울적할 때 선생님이 주신 시편지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아이, 시편지를 냉장고에 붙여두고 온 가족이 함께 본다는 아이, 시편지를 받으면 그걸 토대로 일주일을 살아간다는 아이가 있었다.
쓰면 쓸수록 더 사랑하게 되는 아이들
하루는 한 아이가 학교에 오자마자 내게 노란색 작은 편지 하나를 내밀었다. 아이는 쑥스러운 듯 미소를 보이며 선생님의 시편지에 대한 답장이라고 했다. 편지에는 니체의 시 <그대가 값진 삶을 살고 싶다면>과 함께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선생님은 제가 값진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시는 존재에요.
나는 작은 편지를 건넸을 뿐인데 아이들은 이토록 아름답고 묵직하게 받아주었다. 예전에 나는 아이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일을 썩 잘하지 못했다. 굳이 그것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게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학년이 끝나는 종업식이 되어서야 "얘들아. 사랑해"라는 말로 그동안 간직해온 마음을 전하곤 했다.
그런데 작년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여러 차례 등교가 미루어졌고,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아이들을 보고, 웃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 갑작스럽게 줄어드는 상황을 경험하며 나는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사랑과 응원을 보내고 싶었다.
얼마 전 구병모의 소설 <바늘과 가죽의 시>를 읽다 나는 한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사라질 거니까, 닳아 없어지고 죽어가는 것을 아니까 지금이 아니면 안 돼.
학기 초부터 시작했던 것이 어느덧 4개월이 지나 아이들에게 열일곱 번째 시편지를 건넸다. 며칠 전 아이들과 학교 가까이에 있는 숲에 갔다가 온 세상을 덮을 만큼 잎이 무성해진 나무들을 보고 여름이 왔음을 느꼈다. 오늘 아침 아이들에게 건넨 편지는 이랬다.
올여름의 할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 <여름의 할일>, 김경인
우리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을 모른 척하지 않는 삶을 살자. 혹시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선생님께 이야기하렴. 선생님은 항상 네 편이야.
나는 앞으로도 시집이 놓인 책상 앞에 앉아 시편지를 쓸 것이다. 쓰면 쓸수록 아이들과 시를 더욱더 사랑하게 만드는 이 편지를 나는 쓰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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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나누며, 책이 삶이 되는 순간을 만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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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 아이에게 '니체의 시'를 선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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