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코로나19 로 인한 해고금지 집회때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다.
정주원
정주원은 어릴 때 엉뚱한 구석이 많은 아이였다.
"어렸을 때 꿈은 '맛있는 사과가 되고 싶다'였어요. 장래희망을 그리라고 해서 사과를 그렸는데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어요. 저는 사과나 케이크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달콤함을 선물하고 싶었거든요.
한번은 반공 포스터를 그리라고 해서 김일성하고 전두환하고 악수하는 평화통일 사진을 그렸어요. 싸우는 건 안 좋은 거라고 해서 전두환하고 김일성하고 악수하고 평화통일했으면 하는 장면을 그렸더니 또 선생님한테 혼났어요. 반공이 뭔지 몰랐나 봐요(웃음)."
아무리 분단국가라 해도 90년대까지 학교에서 반공교육을 하다니 놀랍다. 어렸을 때는 하지 말라고 하면 하고 싶은 게 더 많을 때다. 정주원은 이유 없이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하마터면 비행청소년이 될 뻔한 시절도 있었다면서 쑥스럽게 웃었다.
"2016년 11월에 촛불 집회에 갔다가 길을 잃어버렸어요. 촛불 집회에서 예전에 알던 운동권 친구를 만나러 갔는데 길을 잃은 거예요. 연맹 대열에서 이탈해서 사람들을 찾다가 못 찾고 있었는데 그곳에 정의당의 노란색 깃발이 보였어요. 하필 성북구위원회 깃발이었어요(웃음). 정의당이 저와 정치적인 색깔이 맞는 것 같아서 입당했어요. 노회찬 대표를 존경했어요. 그다음부터 촛불집회에 갈 때는 민주노총이 아닌 정의당 깃발을 들고 나갔어요. 촛불집회가 끝나고 나서 대선이 있었어요. 대선을 치를 때 당원들과 함께 선거송도 만들고 그랬어요."
촛불집회에서 우연히 만난 노란색 깃발은 노동조합 활동 다음으로 정주원의 인생을 바꾸었다. 사회를 바꾸는 일을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당 활동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가볍게 생각했던 지역위원회 활동도 쉬 여기지 말아야 할 것이 많았다. 정주원의 열성적인 활동을 지켜본 당원들은 그를 지역위원장으로 추천했다. 2017년에 지역위원장으로 당선되었고 연임을 해서 4년 동안 활동한다.
"당은 선거를 치러야 하고 지역 활동가가 있어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성북시민사회연석회의에 결합했고 연대 활동을 시작했어요. 동구마케팅고등학교에서 해고된 교사의 복직 투쟁을 도왔고, 정치개혁공동행동이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고 했고, 노동인권을 증진하는 조례를 만들자는 제안도 했고요.
당원들과 장난도 많이 치고 친근한 위원장이 되고 싶었는데 품격 떨어진다는 소리를 듣고부터는 조심하게 되었어요. 저는 개그맨 소질이 있어서 당원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어요. 제가 성대모사를 잘해요. 그래서 보여주고 싶었는데 친한 사람들한테만 보여주고 당원들한테는 못 보여줬어요. 그리고 우리 지역위만의 전통이라면서 송년회때 위원장이 고기를 구워야 한대요. 제가 비건도 아니고, 저도 고기 먹고 싶었는데(웃음)."
비록 지역구위원장이었지만 할 일은 많았고, 보람도 많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추진한 일이 성과를 보이고 변화된 지역의 모습을 보면서 뿌듯했다. 하지만 왠지 모를 허탈감이 종종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지역위원장을 하면 다 겪는 거예요. 김준수 위원장님도 그렇겠지만 겉으로 꺼내지 못하는 말이 있어요. 위원장이라는 직책이 주는 압박감이 생각보다 커요. 힘들어도 힘들다는 티를 못 내고 속으로 삭이는 경우가 많아요. 가족한테도 말 못 하는 게 있어요."
두 번의 위원장 임기를 무사히 마친 정주원은 위원장을 하면서 경험했던 에피소드를 위와 같이 털어놓았다. 장난기 가득한 그가 당의 지역위원장 역할을 하느라 쏟아낸 땀방울을 생각하니 내 가슴도 뜨거워졌다.
"노동운동은 어렵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