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4일 오후 경기도 파주 미라클스튜디오에서 대선 출마선언을 했다.
국회사진취재단
"감사원장으로서 법과 원칙을 지키며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임기 6개월을 남기고 감사원장직을 사퇴하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4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출마선언문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이랬다. 그가 감사원장직을 사퇴한 것은 지난 6월 28일. 그렇게 37일 만에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 전직 고위 임명직 공무원의 입에서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는 출마의 변이 나온 것이다.
출마의 전제 자체가 현 정부의 '안티 테제'임을 숨기지 않은 최 전 원장은 현 정부를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으로 규정했다. 전후 맥락이나 선언문 전체의 기조를 따져봐도 바뀔 건 없었다. 그러니까 이전 정부까지 멀쩡했던 대한민국을 무너뜨린 것이 현 정부라는 최 전 원장의 출마선언문 속 문제의식은 "이 정부 반대로만 하면 부동산 풀린다"는 한 마디로 집약된다.
이 정부의 반대? 미안하지만 그 '반대' 정권의 수장들은 지금 줄줄이 구속수감 중이다. MB식 법치주의와 개발지상주의의 폐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 조사결과 속 꼴찌에 가까운 MB의 순위를 보라. 박근혜 국정농단을 단죄한 것도 촛불을 든 국민이었다. 그렇게 '박정희 이데올로기'와의 결별과 청산이 이뤄졌다.
그렇다면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되살리겠다는 최 전 원장의 지향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출마선언 당일 최 전 원장측이 공개한 한 장의 사진에 단서가 담겨 있었다. 가족 명절 모임에서 온 가족이 국민의례를 하는 사진을 공개한 최 전 원장은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른다"고 부연해 많은 이들을 경악케 했다. 그 누구라도 전체주의를, 국가주의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게 수십 년 된 건 아니고요. 몇 년 전부터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버님께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애국가를 끝까지 다 부르자, 그렇게 해서 시작하게 됐죠(...). 국가주의, 전체주의는 아니죠. 나라 사랑하는 거하고 전체주의하고는 다른 말씀 아닙니까? 저희 집안 며느리들은 기꺼이 참석하고 또 아주 같은 마음으로 애국가 열창했습니다."
- 최재형 전 원장, 5일 CBS 라디오 인터뷰 중
퇴행을 뛰어넘는 준비 부족
적지 않은 이들이 영화 <국제시장>을 떠올렸다. 1980년대까지 평일 매일같이 국기 하강식을 하고 국기에 경례를 했던 그 국가주의의 전제와 군사정권의 폐해를 말이다. 이러한 최 전 원장의 국가관은 최근 논란을 자처했던 "일자리 빼앗는 최저임금 인상은 범죄"(지난달 31일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라는 노동관과도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헌법이 정한 최저임금 보장 정책을 '범죄'라 몰아세우는 이러한 최 전 원장의 노동관은 얼핏 노동자들을 기계처럼 인식하는 퇴행적 사고라 볼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그런 법률가 출신 정치인은 또 있었다. '주 120시간 노동' 발언으로 역시나 물의를 빚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 말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 앞서거니 뒤서거니 국민의힘에 입당한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이 꽤나 겹쳐 보인다. 둘 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법률가 출신이다. 현 정부에서 고위직 공무원을 역임했으나 중도 사퇴한 것도, 현 정부의 탈원전 관련 수사를 합작한 것도, 뒤이어 나란히 국민의힘에 입당한 것도 공통점이다.
윤 전 총장이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 댓글' 사건 항명으로 몇 년간 좌천됐을 뿐 둘 다 문재인 정부 이전까지 잘 나가던 법률가였다. 또 최 전 원장은 1956년생, 윤 전 총장은 1960년생으로 두 사람 모두 1970~80년대에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시기를 거쳤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출마 선언 전후 최 전 원장은 '예상보다 훨씬 더 극렬한 보수'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그는 헌법 가치를 가장 잘 지킨 대통령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꼽았다. 애초 '중도'를 아우르겠다던 윤 전 총장은 연일 극우와 다를 바 없는 언사로 입길에 오르는 중이다. 두 사람이 지난해까지 '태극기 부대'를 품었고 이준석 대표 취임 이후 젊은 보수에게 손짓 중인 국민의힘에 입당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