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잣돈을 모으기 위해 절약을 시작했습니다.
최다혜
종잣돈 모으기, '해피'는 과정 말고 '엔딩'에 있었다
복잡한 투자 기술은 엄두도 못 냈고, 절약부터 시작했다. 돈 안 쓰고 돈 모으는 건 머리보다 몸으로 하는 일이니까. 재테크 초보인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책에서 한결 같이 말하던 '종잣돈 모으기'를 시작했다.
십 원 한 장 샐 틈 없이 살림을 시작했다. 봉투 안에 만 원 한 장씩 끼워놓고, 식비는 딱 만 원 안에서만 썼다. 작정하고 돈 안 쓰는 일주일도 도전해봤다. 일주일 동안 안 써보려 했지만, 3일 만에 실패했다. 수박 딱 한 통만 사러 마트에 들어갔다가 피자, 파스타, 시리얼까지 다 담아와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복직했다. 절약해서 종잣돈을 모으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투자용 종잣돈은 월급으로 만들어야 했다. 뱃속에 자라고 있던 둘째가 걱정되어 배에 손을 자주 대어 보면서도, 한 달 200만 원 넘게 통장으로 꽂히던 월급은 종잣돈으로서 꽤 두둑했다. 다 잘 풀릴 줄 알았다. 맞벌이는 종잣돈으로, 종잣돈은 투자 성공으로 이어져 4차 산업 혁명과 100세 시대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 나의 첫 아이, 우리 연우. 먼 훗날의 재난을 막기 위해 다녔던 직장은, 매일 재난 상황이었다. 아이는 종일반에서 자주 아팠다. 아파도 내가 돌볼 수 없었다. 아이는 열이 나서 울었고, 때로는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었다.
아이가 잘 달래지지 않는다는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 전화를 받고도 발만 동동 굴렀다.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갈 수는 없었다. 미안해서 매일 울었다. 맞벌이 부부들이 다들 잘 사는 줄만 알았는데, 겉보기에 멀쩡해 보여도 속까지 평화로운 건 아니었다. 다들 흐느끼며 일한 거구나. 죄책감을 이겨내거나, 무시하거나, 그 무게 그대로 아파하며 버틴 거구나. 무지한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나는 뱃속 둘째도 지키지 못했다. 학교에서 무거운 장구를 들고 나르며, 자진모리 장단에 '모심는 소리'를 4시간 동안 불러댔던 탓일까. 임산부라 동료들과 상사의 배려를 듬뿍 받았음에도 아이는 37주 3일 만에 태어났다. 37주는 미숙아를 가르는 기준이다. 아슬아슬하게 미숙아는 면했다. 여담이지만 아이는 3.54kg였다. 40주 채워 태어났으면 어쩔 뻔했나 싶긴 하다. 그럼에도 뱃속에서 3주 성장할 기회를 놓친 것 또한 사실이다.
종잣돈을 모으던 중에 벌어졌던 험난한 나날은 내 사정만이 아니었다. 그간 절약 서적이나 재테크 서적에 등장한 숱한 사례였다. 지루하고 힘겨운 오늘과 오늘을 버티고 버티자. 그렇게 모은 돈으로 투자에 성공하면 드디어 많이 벌어 많이 쓰는 부자 궤도로 입성! 해피엔딩은 언제나 미래형이었다.
재테크 책은 '10억 부자'가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태어났다. 때문에 절약의 즐거움에 대해 잘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당연하다. 절약하는 과정에서 행복하다면, 부자가 될 필요가 없다.
부자가 되어야 '해피'하다. 따라서 '해피'를 '엔딩'에 배치한다. 반면 고통에는 둔감하다. 아니, 심지어는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라고 말한다. 재테크의 해피 엔딩은 부자가 되는 일이었고, 절약은 부자가 되기 위해 참고 견뎌야 할 힘든 과정이었다.
절약은 부자가 되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될 수 없었다. 간소하고 소박한 삶은 촌스럽고 낡은 생활 양식으로 치부될 뿐이었다. 부자가 되는 온갖 방법이 나열되어 있는 시끌벅적한 재테크 세계의 옆에서 돈 안 쓰는 이야기는 고요했다.
하지만 나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많이 벌어 많이 쓰는 얘기 말고, 버는 돈 보다 적게 쓰는 삶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 알고 보면 절약이 더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