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아크
2021년 3월 3일 봄기운으로 대지가 긴 잠에서 몸을 뒤틀던 때이다. <오마이뉴스>에 올린 연재물 중 '민족분단의 상흔이 남아있는 철원 승일교'가 게재돼, 포털에서는 서로 다른 생각들이 날 선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이었다.
정작 나는 다른 것으로 머리가 아팠다. 이러저러한 사실관계로 기사 내용 이해관계자의 날 선 메일로 내 편지통이 그득 채워진다. 참고문헌을 보며 사실관계를 재확인하고 현장에서 확보한 자료 등으로 대응해 보았으나, 사실관계보다는 명예의 문제로 귀결돼 간다. 결국 기사 일부를 편집기자님과 상의해 수정하기에 이른다.
맥이 풀려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럴 무렵 <오마이뉴스> '내방'으로 쪽지가 날아든다. 루아크 출판사의 천경호 대표라며, 내 글 출간을 협의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소제목도 달지 못하는 변변찮은 병아리 수준 글쓰기에 출간이라니... 이것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이후 몇 차례 메일이 오갔고, 약속을 잡았다. 사는 도시의 도서관 옆 카페에서 천 대표와 마주한다. 큰 키에 서글서글한 눈매의 천 대표는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글 방향을 먼저 말한다.
'철원 승일교' 같은 맥락으로 몇 꼭지 더 써서 독자들 반응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이후 현대식 교량 관련 기사는 철저히 천 대표가 제시한 방향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자 옛 다리와 그 이전 기사와는 다른 반응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역시 글쟁이가 보는 시각은 달랐다.
그때는 두어군데 출판사에서 책 출간에 대한 말들이 오가는 상황이었다. 병아리 수준의 글쓰기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게 사실이다. 천 대표와의 만남으로 나도 모르게 솜털을 벗어나 중병아리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고마웠다.
그리고 루아크 출판사에서 만든 책들을 살펴보았다. 그 중 <오마이뉴스>를 통해 책을 출간한 김소연 작가의 <경성의 건축가들>을 비롯한 몇몇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정성을 다해 출간하는 출판사라는 인상이 훅 끼쳐왔다. 이제는 오히려 내 쪽에서 출판사를 좇을 지경이었다.
아! 어머니
천 대표는 다음 순서로 계약서(안)를 가져온다. 앞서 말한 책을 포함한 자신이 출간한 책 몇 권과 함께였다. 그동안 읽어 온 책들과는 많은 차별을 보이는 책이었다. 책의 장장마다 정성이 묻어난다. 정갈한 표지와 상업적 이익을 생각지 않고 펴낸 책들마저 있다.
경외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든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면서 틈틈이 원고 작업에 들어간다. 20꼭지를 골라 분량을 늘여 조절하고, 참고문헌과 세세한 자료를 지속 보완해 나간다.
그때 어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하신다. 코로나19로 추석에도 설날에도 뵙지 못한 어머니다. 연세에 비해 건강하셨으므로, 그리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감기로 입원한다는 전화기 속 음성을 들었다.
병원에서는 급성폐렴이란다. 가슴이 철렁한다. 연세를 감안하면, 결코 안심할 병환이 아니다. 급하게 코로나19 검사를 마친다. 병원 중환자실에 계셔, 면회도 여의치 않다. 음성 판정을 받아, 날이 밝으면 시골에 가 뵈려던 시간이 새벽 2시로 당겨진다. 결국 고속도로에서 임종도 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어머니를 보내드려야만 했다. 원고가 중간을 지나가던 즈음이다. 자식이 글을 써 낸다는 자랑으로 얼굴이 늘 환하시던 분이었다.
아픔은 아픔이고, 원고는 원고였다. 난 본디 '하고잡이'(Workaholic) 아니던가? 큰 슬픔을 이겨내는 데 일만한 것이 어디 있던가? 그렇게 힘들게 봄과 함께 원고도 천 대표께 가까스로 보낼 수 있게 됐다.
엉덩이 힘을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