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전통 결혼식제주에서는 전통적으로 결혼식 전후에 5일 잔치 혹은 7일 잔치를 벌였으나 최근에는 당일잔치를 하는 사례도 눈에 띈다.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촬영.
황의봉
무엇보다도 '겹부조'라는 말이 널리 쓰일 정도로 부조 방식이 육지와는 판이하다는 점이 신기했다. 겹부조란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에게 각각 따로 부조하는 풍습이다. 예를 들어 신랑과 신부를 모두 알고 있다면 축의금을 두 사람에게 각각 주어야 한다. 신랑·신부의 부모와도 친분이 있다면 역시 따로 축의금을 주어야 한다.
예식장에 접수대와 방명록이 준비된 육지와는 달리 제주는 대부분 혼주와 신랑·신부가 하객으로부터 직접 부조 봉투를 받는다. 그러다 보니 신랑이나 신부가 직접 축의금을 받고 관리하기가 어렵게 된다.
이래서 생겨난 게 부 신랑과 부 신부다. 친한 친구들 중에 부 신랑과 부 신부를 정하면, 이들이 신랑과 신부를 대신해 축의금 관리부터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겹부조가 하객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면 길고 긴 피로연은 혼주나 신랑·신부에게 부담이 되는 행사다. 제주의 결혼잔치를 흔히 3일 잔치라고 한다. 잔치는 도새기(돼지) 잡는 날부터 시작된다. 돼지 잡고 삶느라고 온종일 부산하다. 과거에는 돼지 몇 마리를 잡느냐가 그 집안의 능력을 보여주는 척도였다고 한다.
2일째는 가문잔치를 치르는 날이다. 예식 전날 친척과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종일 잔치를 한다. 결혼식 당일보다도 손님이 더 많은 게 보통이다. 3일째 당일 잔치를 치른다. 결혼식 당일, 피로연이라는 이름으로 하객들을 접대하는데, 역시 온종일 진행된다.
제주에서는 전통적으로 5일 잔치나 7일 잔치, 최소한 3일 잔치를 했지만 최근 들어 호텔이나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가문 잔치와 당일 잔치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요즘엔 당일 잔치만 치르기도 하지만 이 역시 종일 이어진다.
이처럼 제주의 결혼식 문화가 겹부조와 오랜 잔치로 인해 이른바 '작은 결혼식'을 지향하는 최근의 추세와는 동떨어진 게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 무엇보다 경제적 부담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은 게 사실이다. 하객 숫자와 축의금 규모가 전국 평균에 비해 2배 안팎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제주의 결혼문화를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게 이런 풍습이 왜 생겨났을까, 하는 점이었다. 제주 토박이들에게 물어봐도 조금씩 다르게 말하고 있다.
독특한 개별 부조, 독특한 접대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은 제주의 독특한 개별 부조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부모와 자녀 간 철저한 분가 제도와 부부 간 독립된 경제활동 관습이 겹부조 문화로 굳어졌다는 분석이다.
분가 제도는 제주의 주택구조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한다. 제주의 전통적인 가옥구조는 안거리(안채)와 밖거리(바깥채)로 이루어졌다. 안거리에 살던 부모는 장남이 결혼하면 밖거리로 옮기고 대신 자식 부부가 안거리에 거주한다. 이때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는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한 단위가 된다. 안거리에 사는 자식이 밖거리에 사는 부모 텃밭 농사를 거들어주면 부모도 똑같이 자식 농사를 거들어줄 정도로 명실상부한 분가 제도가 자리 잡았다.
또 재산상속도 아들과 딸, 장남과 다른 자식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러한 철저한 분가 제도를 통해 부모와 자식 간은 물론, 부부 사이에도 비교적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게 됐다. 특히 부부 간에도 어느 정도 독립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하다 보니 가족 구성원이 개별적으로 하는 겹부조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결혼식 잔치나 피로연을 오랜 시간 치르는 접대 문화는 섬이라는 특성을 지닌 제주의 공동체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예전에 제주에서 혼례를 치르려면 공동체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고 한다. 물이 귀하다 보니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잔치에 쓸 물을 길어다 주었고, 땔감을 준비하고 돼지를 잡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물 부조'라는 말도 이래서 나왔다고 한다. 이런 상부상조의 전통이 공동체와 함께 나누는 잔치나 접대문화로 이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