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도지오름 정상에서 본 풍경 온통 푸른 숲의 바다가 펼쳐져 곶자왈의 지붕이라고도 한다.
황의봉
오늘은 한경면 저지리에서 하루를 보낼 계획으로 집을 나섰다. 일단 문도지오름과 저지곶자왈을 걷고, 저지리 중심지로 돌아와 저지오름과 미술관을 돌아보기로 했다.
저지리는 대평리와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을이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하룻밤 신세를 진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대평리가 난드르와 박수기정이라는 독특한 지형으로 눈길을 끌었다면, 저지리는 자연·문화예술·관광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곳이어서 관심을 두고 있는 곳이다.
자동차를 저지리 복지회관 주차장에 세우고 한라산이 보이는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이 길은 올레 14-1코스이기도 하다. 저지곶자왈에 봄이 오면 백서향의 향기가 온 숲에 퍼져나간다고 해서 때늦은 줄 알면서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리고 올레길 완주에서 빼먹은 14-1코스를 뒤늦게 걷고 싶기도 했다.
길을 내주니 고맙다
문도지오름까지 5㎞의 시골길은 평화롭고 또 여유로웠다. 요즘 제주의 마을 곳곳에는 이른바 타운하우스가 자리를 잡고 있다. 마치 집단의 힘이라도 과시하듯, 똑같이 생긴 집들이 똑같은 표정으로 늘어선 이 타운하우스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아무런 감흥을 못 느낀다. 그런데 문도지오름까지 오면서 그 흔한 타운하우스를 보지 못했다. 크고 작은 집들이 전원 속에 자세를 낮추고 앉아 있을 뿐이다.
문도지오름은 소와 말을 방목하는 사유지다. 제주올레를 위해 길을 내줬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숨은 명소였는데, 제주올레 코스를 개척하던 탐사팀이 왔다가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14-1코스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10분 정도 오르니 정상이다.
표고 260m의 널찍한 정상부에는 야생화가, 비탈면으로는 고사리가 제 세상을 만난 듯하다. 그리고 사방은 온통 푸른 숲의 바다가 펼쳐진다. 일명 곶자왈의 지붕이다. 한경면에서 시작한 곶자왈은 안덕면 서광리까지 무려 9.3㎞나 이어진다고 하니 그리 틀린 말은 아니겠다. 곶자왈을 배경으로 나지막하게 솟은 문도지오름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안온하고, 평화롭다.
문도지오름을 거쳐 저지곶자왈 지대로 들어섰다. 온갖 종류의 나무와 넝쿨이 어지러이 엉켜 자라고, 바닥은 흙 대신 용암이 굳어버린 바윗덩어리가 뒹구는 원시의 숲이 곶자왈이다. 제주올레가 길을 내지 않았다면 안심하고 곶자왈 지대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 사람이 지나갈 수 있도록 우거진 나무 넝쿨을 정리하고 울퉁불퉁한 돌을 평평하게 골라 길을 만들고, 리본을 달아 헤매지 않도록 해주었으니 참 고맙다!
꽃이 피어 있으리라고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백서향은 꽃 대신 나무와 잎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백서향의 하얀 꽃이 제주의 봄을 가장 먼저 알린다고 한다. 내년엔 2월쯤 일찌감치 와봐야겠다.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천리향의 일종인 제주 백서향, 예전에는 흔한 꽃이었지만 사람들이 마구 캐가는 바람에 지금은 희귀종이 되어 버렸단다.
저지곶자왈 지대 2.5㎞를 지나 세상 밖으로 나오니 유명 관광지 오설록 차밭이다. 이곳은 언제나 관광객이 넘쳐난다. 덕분에 제주시에서 운영하는 관광 순환버스를 이용해 손쉽게 저지리 중심부로 되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