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밤나무 그루터기에 자라는 어린 밤나무입니다. 아직 어린 나무라서일까요? 3년 전부터 밤이 열리는데, 몇송이 열리지 않는답니다. 게다가 밤한송이에 딱 한알씩(회오리밤)을 맺고요. 이 밤나무는 언제쯤 쌍동밤 혹은 두개 이상의 밤을 품은 밤송이를 피울 수 있을까요?
김현자
우리 집 밤나무는 기와를 올린 담을 따라 자랐다. 밤이 한창 익을 무렵이면 한동안 밤낮으로 떨어지곤 했는데, 특히 가을밤 공기를 가르며 기와나 슬레이트 지붕에 떨어지는 소리에 선잠을 깨기 일쑤였다. 그런 즈음 어둠도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마다 동생들과 밤나무 아래로 달려가 눈을 비비며 이슬을 잔뜩 뒤집어쓴 밤을 한 바가지씩 줍곤 했다.
가을 내내 새벽마다 주운 밤을 불 속에 묻어 구워 먹곤 했는데, 엄마는 매일 주워온 밤에서 크고 야무진 것 몇 개를 골라내 모았다가 정지(부엌) 한쪽에 묻어두곤 했다. 이듬해 설날에 쓸 밤을 땅에 묻어 저장한 것이다. 그런데 크고 굵은 밤을 유독 많이 주웠던 날에도 엄마는 겨우 몇 개만 골라 지난 며칠 모아오던 바가지에 담곤 했다.
어렸을 때 그러려니, 별 의미 없이 받아들였다. 얼마 전까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거의 잊어버렸다. 그런데 올해 밤나무 주변을 자주 맴돌게 되면서 엄마가 그랬던 것이 비로소 생각났고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몇 년 전 80대 중반을 넘긴 엄마는 이젠 많은 것들을 잊어버린 눈치다. 그런 엄마라 물어볼까? 말까? 며칠 망설이다 물어보니 선뜻, 명쾌하게 대답하신다.
"군입거리가 제대로 있었나. (제사보다) 자식들 입이 더 중허니(소중하니) 그랬지!"
어린 시절, 밤은 가장 달콤한 군입거리였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우리의 입을 행복하게 했다. 그렇다 보니 가을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하루에도 몇 번을 올려다보며 밤송이가 벌어지길 기다리곤 했다. 봄이면 밤나무 주변을 돌며 예쁜 밤 깍지들을 모아 소꿉놀이를 하곤 했다. 군입거리만이 아닌 많은 것들을 주는 밤나무였다. 그런 밤나무와 함께해온 것들이 오죽 많으랴.
고향을 떠나 살면서 한동안 밤과 관련된 수많은 일들이 떠오르며 그립곤 했었다. 가을이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런데 암꽃과의 만남 덕분에 오랜만에 떠올리게 된 것이다. 뭣보다 기억 속에만 어렴풋이 있던 것을 엄마께 물어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며칠 전, 고이 품어 키운 알맹이를 떨어뜨린 밤송이는 이틀 후 빈껍데기로 떨어졌다. 새로운 생명을 바라며 품어 키운 알맹이들을 내보내는 밤나무를 보며 고향의 밤나무가 떠올랐다. 새로운 호기심도 생겼다. 올해 암꽃이 피었던 그 줄기나 그 자리에 암꽃이 다시 필까? 내년엔 아마도 암꽃 필 자리가 부풀어 오르는 것부터 보고 싶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기사, 개인 블로그에서 밤과 관련한 정보를 일부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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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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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한 송이가 자라 밤 한 톨로... 귀한 광경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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