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실제로 만들어준 책
신은경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읽기'를 좋아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비활동적이고 내성적이었으니 '독서'는 안성맞춤인 취미 활동이었다. 나에게 책은 당연하게도 '읽는 것'이었다. 2018년 11월 26일까지는.
2018년 11월 27일, 아이의 초음파 사진을 확인한 첫날만큼 내 인생에서 경중을 겨룰 중요한 날이다. 그날은 '에세이 쓰기' 수업을 받은 첫날이다. 이 수업을 받게 된 경위도 역시 아이가 중요한 매개체이다. 초등 3학년이 된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책을 조금이라도 더 읽힐 수 있을까'라는 바람을 가지고 들었던 독서 강연에서 엄마들의 독서모임이 만들어졌다.
'책산책'이라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던 중 책 <소년의 레시피>를 읽는 주간이었다. 한 선생님이 그 책을 쓴 작가가 군산에 산다는 정보를 접하고 우리 모임에 참석해 주기를 청했다. 큰 기대 없이 청한 그 요청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 그때는 몰랐다.
도서관 안에 위치한 크지 않은 회의실에서 책의 저자(배지영 작가)와 함께 책 이야기를 나누는 새로운 경험에 나는 그녀와 그녀의 책에 반했다. 바로 그녀의 다른 책들을 구해 읽던 중 군산 한길문고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가졌다.
그날 강연은 들으면서 이상하게 내 가슴이 간질거렸다. 글이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퐁퐁 솟아났다. 그동안 글은 읽는 것이라고만 여겼는데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잠자리에 들어서도 계속 샘솟았다. 간질거리는 가슴 때문에 그날 밤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로부터 18일 뒤, 나는 '나도 쓸 수 있는 에세이' 수업을 듣는 학생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이었다. 경제적인 결과물을 기대할 수도 없고,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고, 어떤 경력을 쌓는 것도 아닌 순전히 '내가 하고 싶어서'였다.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배지영 작가는 숙제를 내주었다. 그동안 써온 글을 바깥세상에 내보내기, 그 수단으로 <오마이뉴스>를 소개해주었다. 나는 그렇게 '시민기자'가 되었다. 일기 같던 내 글이 점점 괜찮아진다는 칭찬을 듣긴 했지만 나를 전혀 모르는 불특정 다수에게 내 글을 공개하는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첫 글이 채택되자 더 열심히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오마이뉴스>는 내게 훌륭한 당근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작가 강연에 참가하고, 만났던 작가의 신간이 나오면 반갑게 읽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작가들은 계속 책을 쓰는 구나' 당연하다. 그들은 작가이니까. 하지만 나는 작가도 아닌데 내 책이 쓰고 싶어졌다. 여러 공모전에도 참가해 보았지만 아직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계속 쓰고 싶었다.
배지영 작가에게 올해(2021년) 한글날을 맞이해 출판기념회를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사실 출판기념회는 작년에도 했었다. 올해가 두 번째. 한 번 경험해 본 쾌락을 마다할 수 없던 나는 '독립출판'에 다시 한 번 도전했다.
그렇게 책 <팬데믹 바다에서 살아남기>는 세상에 나왔다. 작년(2020년)부터 올해(2021년)까지 팬데믹을 겪으면서 나는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다고 생각했었다. 이 책을 쓰면서 '할 수 없는 일'만 바라보고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적어보고 그 중에서 '해도 되는 일'을 골라보았다. 생각보다 많았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고 나는 그것들을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외출을 못하니 가족들과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들과 적당한 거리두기 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바이러스가 전파된 원인을 찾다가 환경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내 아이들과 그들의 아이들에게 건강한 지구를 물려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또한 살아가는 방법은 모범 답안이 없으며 변수가 나타나도 얼마든지 좋은 결과값을 얻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방식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을 쓰면서 꿈이 생겼다. 노후를 대비하기 위한 경제력을 축적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것, 나는 이것을 '엄마의 장래 희망'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몇몇 공모전에 써온 글을 내보기도 했다. 여러 차례 낙방하면서도 나는 슬프지도 기운이 빠지지도 않았다. 앞으로가 있기 때문이다. 평균수명이 점점 길어지는 시대에 나는 앞으로 할 일을 찾은 것 같았다. 아직 14살 아이를 키우며 직장 다니는 엄마이지만 몇 년 뒤 아이는 성인이 될 것이고 다시 몇 년 뒤 나는 은퇴할 것이다. 그 뒤에 펼쳐질 내 인생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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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아들을 키우며 꿈을 이루고 싶은 엄마입니다.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다같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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