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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피켓 들고 산을 오르는 이유

[활동가 인터뷰 - 스무 번째 이야기] 허영구 노년알바노조준비위원회 활동가

등록 2021.12.06 09:49수정 2021.12.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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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고산에서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허영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노고산에서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허영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허영구

나는 스무 살 중반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역사기행'이라는 목적이 있었다. '공부'하러 간다는 마음으로 산에 갔던 것이다. 지금은 극기 훈련하듯 산에 오른다. 20대 때는 늘 선두를 놓치지 않았으나 지금은 뒤에서 두 번째 아니면 꼴찌로 산에 오른다. 산에 갈 때마다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역임한 허영구님이 떠올랐다. 그는 피켓을 들고 산을 오른다. 산에 오를 때마다 바뀌는 피켓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문구가 가득하다.

"노인 빈곤율 OECD 국가 중 1위!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라."
"장애인 활동지원사 기본권을 보장하라."


얼마 전에 이 문구를 보고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지난 11월 20일, 전형적인 만추를 연출한 서울혁신파크에서 허영구(65)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을 만났다. 

"산은 오르기 시작하는 초반부가 제일 힘들어요. 그렇지만 '정상'이라는 목표가 있으니까 힘들어도 참고 올라가는 거지요. 목표가 없으면 포기하게 돼요. 예전에는 산에 갈 때,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게 목적이었어요. 지금은 정상을 찍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전할 메시지를 스케치북에 쓰고 인증샷을 찍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배낭에 스케치북과 매직을 넣어서 산에 가요. 정상에 올라가서 드는 피켓은 집에서 미리 써서 갈 때도 있어요. 산에 가면 바람이 많이 불고 메시지 쓸 곳이 마땅치 않아서에요. 산에 갔다 오면 아주 상쾌해요(웃음)."


산 정상에 올라가기도 힘든데 올라가서 피켓을 들고 인증샷을 찍는 허영구 전 부위원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남다르다는 것에 놀랐고, 반드시 정상에서 인증샷을 찍는 것에 놀랐다. SNS에 올라온 사진은 셀카가 아니었다. 셀카가 아닌 사진은 도대체 누가 찍어주는 것일까, 궁금했다. 

"주로 옆지기하고 산에 가요. 제 사진은 옆지기가 찍어주는 거예요. 옆지기가 자연환경 해설사예요. 덕분에 자연생태나 숲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제가 노동운동하면서 생긴 전과 경력이 20범이에요. 87년에 단위노조(사무전문직)에서 부터 활동을 했으니까요. 그동안 옆지기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생활비는 어떻게든 갖다 줬으니까 경제적 문제는 덜 했겠지만 마음고생을 많이 했어요. 저는 아이들 육아도 신경을 못 썼어요.

노동운동하면서 사건 하나 걸리면 법원과 검찰에 수십 번 조사받으러 다녔어요. 우리 집에 오는 우편물은 항상 파란색 봉투였어요. 관청에서 오는 봉투는 색깔이 파랗잖아요. (옆지기가)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겠어요. 생각만 해도 미안하죠."



자부심을 가지고 활동했다
 
 인터뷰하고 있는 허영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인터뷰하고 있는 허영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문세경

사회운동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안정된 직장에 다니던 허영구는 1987년 6.10 민주화 항쟁이 일어나자 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노동조합 활동에도 참여한다. 그해 12월부터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을 한다. 1994년 민주노총이 출범하기까지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다.

"저는 원래 농부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왜냐하면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니까요. 부모님이 농사짓는 것을 보면서 자랐잖아요. 농사일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흥미도 있었고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갔는데 1학년 때 희망하는 대학을 써서 내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농대에 가고 싶고 장래희망이 농장 경영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농부가 될 텐데 뭐하러 대학에 가냐고 하셨죠.

결국에는 농대에 갔고 대학원까지 갔어요. 대학원에 가보니까 농부가 되겠다는 꿈에서 학자가 되겠다는 꿈으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농촌경제연구원에 가서 5년 정도 연구원으로 열심히 일했어요. 일 하는 중에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터졌어요. 그래서 연구노조가 생기고 노동운동의 길로 들어선 거죠."


멀쩡하게 직장에 잘 다니고 있던 허영구에게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연구원 선배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같이 하자고 저를 꼬셨어요. 처음에는 조합원만 하고 노조 간부는 안 하겠다고 했는데 1년에 한 번 감사하는 자리니까 맡아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발을 들여놓았는데 매일 회의를 한다고 저를 부르는 거예요. 왜 부르냐고 했더니, 회계감사도 임원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한 1년 정도 수동적으로 활동을 했어요.

다음 해에는 저보고 위원장을 하라고 해요. 조그만 연구소라 돌아가면서 위원장을 하니까 거절할 수 없었어요. 연구소에서는 노동운동이랄 것도 없죠. 그렇게 시작했는데 89년이 되니까 저희 연구원이 포함된 전국전문기술노동조합연맹도 만들어지고 전국노동자협의회(전노협) 건설을 위한 조직화가 시작된 거예요. 조직화 사업을 하다가 노동운동에 빠진 거지요(웃음)."


1994년, 민주노총이 출범하기까지 허영구의 활동은 눈에 띄었다. 당시만 해도 노동운동이 성장하고 있던 시기라 더 그랬다. 정권은 민주노총을 탄압했지만 믿어주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허영구는 자부심을 가지고 활동했다. 지금은 그때와 달리 노동운동도 침체기이고 사회분위기도 많이 달라져서 허영구의 얼굴에는 잠시 허탈함이 보였다. 

"저의 장점은 기록하는 거예요. 매일매일 내가 한 활동을 기록으로 남겨요. 어디서 연설을 했거나, 토론을 하면 그걸 정리해서 자료로 남기는 거죠. 2003년 부터 매일 인터넷에 올린 글을 모아서 몇 권의 책을 냈어요. <자본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맞선 기록들> 1집(1991~2003년, 1,068쪽), 2집(2004~2014, 1,551쪽)을 발간했고, 3집도 준비 중입니다.  

저는 정치를 잘 못하는 것 같아요. 노동운동에서 정치는 사람을 모으고 세력을 만드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소극적인 성격 탓인지 그런 걸 잘 못해요. 민주노동당 시절에도 당원으로만 있었고 출마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어요. 기회가 오겠지라고 생각은 했는데 확 뛰어들어서 하는 건 잘 안 되더라고요. 그렇게 머뭇거리다 보니 진보진영도 많이 분화되었고 나이가 들어버렸죠. 지금은 정치 평론이나 하고 있어요(웃음)."


노동운동에서 노인복지운동으로

소극적인 성격 탓이라는 말에는 동의가 안 된다. 그의 열정은 아직 식지 않았다. 현재 투기감시센터의 고문을 맡고 있으며, 2년 전부터는 노년 노동자들을 조직해 '노년알바노조 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노년 알바노조는 65세 이상의 노인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어요. 65세 이상으로 잡은 이유는 기초연금을 받는 나이가 65세이고, 노인복지의 시작이 기초연금이라서 그렇게 잡았어요.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이 세계 1위예요. 빈곤한 노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노인복지와 노인 일자리죠.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실태조사도 하고 정부에 정책건의도 하고 있어요. 

노년알바노조는 기존의 임금과 고용을 중심으로 하는 노조가 아니라 노인의 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노조 성격이 강해요. 100세 시대인데 가난한 노인들의 최저생계가 보장되고 건강해야 남은 생을 의미 있게 살 수 있잖아요. 조합원 대부분이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서 공부를 제대로 못한 여성분들이 많아요. 이분들은 일도 하시고 생활도 해야 하는데 사회는 너무 젊은 사람들 위주로 굴러가고 있어요. 제일 불편한 게 소통이에요. 영어는 물론이고 외래어를 모르니까 소통이 안 되는 거죠. 

예를 들면, 고층아파트 이름을 '○○캐슬'이라고 할 때, '캐슬'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 답답한 거죠. 인터넷도 잘 모르시고, 키오스크 단말기 사용법을 모르니까 노인들은 소외감을 느껴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알바노조 회원 분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기초 영어강의를 해요. 또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컴퓨터 사용법, SNS활용법, 전화기 사용법(카톡 보내기, 영상 통화하기 등) 등도 강의하고요."


노동운동에서 노인복지운동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간 허영구는 자투리 시간도 그냥 보내지 않는다. 주중에는 알바노조준비위원회 활동을 하고, 주말에는 산에 가서 사회문제 이슈를 담은 피케팅을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텃밭에 가서 일한다. 

한시도 멈추지 않고 뭔가를 하고 있는 허영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그가 염원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열정은 어쩌면 중독성 있는 물질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마치 마약과 같은 끊지 못하는 독한 물질이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텃밭 농장에서 수확한 고구마
텃밭 농장에서 수확한 고구마허영구

"민주노총 소속 어느 노동조합이 임대한 600여 평의 노동자 텃밭을 함께 가꾸고 있어요. 상추, 무, 배추 고구마, 감자 이런 거 심고 수확해요. 텃밭을 하면 작물 크는 거 보는 재미가 쏠쏠하죠. 수확하는 재미도 크고요. 그런데 자주 못 가면 풀이 많이 자라서 풀과의 전쟁을 치러야 해요. 

남은 인생에 뭔가를 꼭 이루고 죽어야겠다, 이런 건 없어요. 그냥 오늘의 삶에 만족해 왔어요. 말하자면, 집을 지을 때 기초를 닦고 벽돌을 쌓는 것처럼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으면서 사는 거예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노인들과 함께 하는 일을 시작했으니까 그 활동을 계속 할 거고요, 항상 해왔듯이 기록 활동을 이어 가는 것, 이것이 제가 남은 생에서 꼭 해야 할 일이죠.

오래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중요하잖아요. 저는 건강의 비결을 텃밭 가꾸기, 등산하기, 집안일하기 등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집의 오래된 세탁기가 고장이 나서 탈수만 돼요. 그래서 모든 빨래는 손빨래를 해요. 제가 빨래 담당이라 제가 하죠(웃음). 이불이나 두꺼운 옷은 장화 신고 발로 꾹꾹 밟아서 빨아요."


노동운동을 하신 분이라 무뚝뚝하고 집안일은 잘 안 하실 것 같았는데 손빨래까지 하신다니 의외다. 친환경 삶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농사도 짓고 자급자족까지 하는 삶이라니, 노년에 이렇게 살면 건강은 '덤'이겠다. 

30년 동안 노동운동을 했던 허영구는 여전히 건강한 모습이다. 한국사회 노동운동의 한 획을 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의 족적을 남겼다. 그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은 에피소드가 무어냐고 물었더니 아래와 같이 말하고 홀연히 떠났다. 그의 에피소드를 들으며 아직은 기댈만한 노선배가 있다는 것이 든든했다.

"노동운동하면서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투쟁'이죠. 지금은 민주노총이 집회만 하면 불법이라면서 위원장이 잡혀가잖아요. 예전에는 투쟁을 제대로 하면 구속이 안 됐어요. 96~97년에 정리해고 반대하는 총파업 때였어요. 명동성당에서 민주노총 집행부가 한 달 동안 농성을 했어요. 그때 지명수배 돼서 갇혀 있었죠. 그런데 총파업 투쟁에서 승리했어요. 국회에서 여당 단독으로 정리해고제를 날치기로 통과시켰고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이 서명했어요. 그러면 법이 발효가 되잖아요.

그때,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강력하게 했어요. 정리해고 날치기 법을 국회에 돌려보내서 폐기시켰어요. 헌정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 아니었나 싶어요. 명동성당 농성 끝나는 날, 김수환 추기경도 축하해 줄 정도였죠. 하지만 법적으로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수배 중이라서 검찰에 조사를 받으러 갔어요. 간단한 조사가 끝날 무렵 검사가 마지막으로 이번 총파업의 의미가 뭐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제가 인권, 노동권, 생존권에 대해 신나게 말했어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네요(웃음)."
#활동가 인터뷰 #허영구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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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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