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하고 있는 허영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문세경
사회운동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안정된 직장에 다니던 허영구는 1987년 6.10 민주화 항쟁이 일어나자 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노동조합 활동에도 참여한다. 그해 12월부터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을 한다. 1994년 민주노총이 출범하기까지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다.
"저는 원래 농부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왜냐하면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니까요. 부모님이 농사짓는 것을 보면서 자랐잖아요. 농사일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흥미도 있었고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갔는데 1학년 때 희망하는 대학을 써서 내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농대에 가고 싶고 장래희망이 농장 경영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농부가 될 텐데 뭐하러 대학에 가냐고 하셨죠.
결국에는 농대에 갔고 대학원까지 갔어요. 대학원에 가보니까 농부가 되겠다는 꿈에서 학자가 되겠다는 꿈으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농촌경제연구원에 가서 5년 정도 연구원으로 열심히 일했어요. 일 하는 중에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터졌어요. 그래서 연구노조가 생기고 노동운동의 길로 들어선 거죠."
멀쩡하게 직장에 잘 다니고 있던 허영구에게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연구원 선배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같이 하자고 저를 꼬셨어요. 처음에는 조합원만 하고 노조 간부는 안 하겠다고 했는데 1년에 한 번 감사하는 자리니까 맡아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발을 들여놓았는데 매일 회의를 한다고 저를 부르는 거예요. 왜 부르냐고 했더니, 회계감사도 임원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한 1년 정도 수동적으로 활동을 했어요.
다음 해에는 저보고 위원장을 하라고 해요. 조그만 연구소라 돌아가면서 위원장을 하니까 거절할 수 없었어요. 연구소에서는 노동운동이랄 것도 없죠. 그렇게 시작했는데 89년이 되니까 저희 연구원이 포함된 전국전문기술노동조합연맹도 만들어지고 전국노동자협의회(전노협) 건설을 위한 조직화가 시작된 거예요. 조직화 사업을 하다가 노동운동에 빠진 거지요(웃음)."
1994년, 민주노총이 출범하기까지 허영구의 활동은 눈에 띄었다. 당시만 해도 노동운동이 성장하고 있던 시기라 더 그랬다. 정권은 민주노총을 탄압했지만 믿어주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허영구는 자부심을 가지고 활동했다. 지금은 그때와 달리 노동운동도 침체기이고 사회분위기도 많이 달라져서 허영구의 얼굴에는 잠시 허탈함이 보였다.
"저의 장점은 기록하는 거예요. 매일매일 내가 한 활동을 기록으로 남겨요. 어디서 연설을 했거나, 토론을 하면 그걸 정리해서 자료로 남기는 거죠. 2003년 부터 매일 인터넷에 올린 글을 모아서 몇 권의 책을 냈어요. <자본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맞선 기록들> 1집(1991~2003년, 1,068쪽), 2집(2004~2014, 1,551쪽)을 발간했고, 3집도 준비 중입니다.
저는 정치를 잘 못하는 것 같아요. 노동운동에서 정치는 사람을 모으고 세력을 만드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소극적인 성격 탓인지 그런 걸 잘 못해요. 민주노동당 시절에도 당원으로만 있었고 출마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어요. 기회가 오겠지라고 생각은 했는데 확 뛰어들어서 하는 건 잘 안 되더라고요. 그렇게 머뭇거리다 보니 진보진영도 많이 분화되었고 나이가 들어버렸죠. 지금은 정치 평론이나 하고 있어요(웃음)."
노동운동에서 노인복지운동으로
소극적인 성격 탓이라는 말에는 동의가 안 된다. 그의 열정은 아직 식지 않았다. 현재 투기감시센터의 고문을 맡고 있으며, 2년 전부터는 노년 노동자들을 조직해 '노년알바노조 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노년 알바노조는 65세 이상의 노인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어요. 65세 이상으로 잡은 이유는 기초연금을 받는 나이가 65세이고, 노인복지의 시작이 기초연금이라서 그렇게 잡았어요.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이 세계 1위예요. 빈곤한 노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노인복지와 노인 일자리죠.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실태조사도 하고 정부에 정책건의도 하고 있어요.
노년알바노조는 기존의 임금과 고용을 중심으로 하는 노조가 아니라 노인의 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노조 성격이 강해요. 100세 시대인데 가난한 노인들의 최저생계가 보장되고 건강해야 남은 생을 의미 있게 살 수 있잖아요. 조합원 대부분이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서 공부를 제대로 못한 여성분들이 많아요. 이분들은 일도 하시고 생활도 해야 하는데 사회는 너무 젊은 사람들 위주로 굴러가고 있어요. 제일 불편한 게 소통이에요. 영어는 물론이고 외래어를 모르니까 소통이 안 되는 거죠.
예를 들면, 고층아파트 이름을 '○○캐슬'이라고 할 때, '캐슬'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 답답한 거죠. 인터넷도 잘 모르시고, 키오스크 단말기 사용법을 모르니까 노인들은 소외감을 느껴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알바노조 회원 분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기초 영어강의를 해요. 또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컴퓨터 사용법, SNS활용법, 전화기 사용법(카톡 보내기, 영상 통화하기 등) 등도 강의하고요."
노동운동에서 노인복지운동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간 허영구는 자투리 시간도 그냥 보내지 않는다. 주중에는 알바노조준비위원회 활동을 하고, 주말에는 산에 가서 사회문제 이슈를 담은 피케팅을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텃밭에 가서 일한다.
한시도 멈추지 않고 뭔가를 하고 있는 허영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그가 염원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열정은 어쩌면 중독성 있는 물질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마치 마약과 같은 끊지 못하는 독한 물질이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