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벌써 냉이가 나온다. 사진은 아이의 된장국에 넣어준 냉이다.
최원석
집으로 돌아와 된장찌개를 끓였다. 끓이면서 머릿속을 지배하는 문장은 단 하나다. 안 먹으면 어떡하지... 다음에는 대체 뭐 해줘야 하지다. 곁에서 된장을 끓이는 것을 넌지시 보고 있는 아내의 마음도 뭐가 다르랴. 어쩌면 나보다도 더 간절한 마음이리라.
보글보글 끓은 된장을 한 김 식혀서 아이에게 주었다. 된장찌개에 들어간 건더기 위주로 식사를 하는 아이는 맛을 보고 처음에는 낯선지 한참 멀뚱한 표정을 지었다. 나름의 탐색전을 하더니 이내 잘 먹기 시작했다. 아이 엄마가 다행이라며 박수를 치는 모습을 등지고 부엌을 나왔다. 함께 기뻐하는 틈을 가질 시간이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아내의 과제가 하나 더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빵을 좋아한다. 그래서 아이가 원하거나 엄마가 먹을 때 같이 먹으려고 하는 상황에는 한 번씩 빵을 먹었다. 이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정한 빵집의 식빵만 먹었는데 이제는 평소에 좋아하던 이 빵도 먹지를 않았다.
아이는 증조할머니 집에 갔다가 슈에 들어간 커스터드 크림 맛을 본 적이 있었다. 우연히 아이의 이모할머니가 반응을 보려고 조금 줘 보았단다. 그 조금의 크림을 먹고 아이가 더 달라고 칭얼거렸다는 아내의 말을 전해 들은 적이 있었다. 아내가 주문한 다른 특명은 바로 이 커스터드 크림을 아이가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아내의 특명에는 이유가 있다. 시중에 파는 커스터드 크림을 아직 어린 아이에게 사서 먹이기는 좀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에게는 예전에 커스터드 크림을 만들었던 레시피가 있었다. 한 번씩 레시피를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기도 했던 레시피였다.
여기에 단맛을 최소로 넣어서 만들어야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버터도 적게 그리고 설탕 대신 꿀과 자일리톨 설탕을 넣고 바닐라 빈을 갈라 씨를 넣어서 직접 만들어서 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나름의 치트키, 이 또한 된장찌개와 마찬가지로 사기의 조합이다. 이거 안 되면 큰일이다 싶은 또 다른 특단의 조치다.
계란과 버터를 준비하고, 밀가루를 체를 치는 등의 지난하고 험난한 과정을 거치고 바닐라 빈까지 싹싹 긁어서 커스터드 크림을 만들었다. 만들면서도 오랜만에 만드는구나라는 생각에 피식, 아이 하나 먹이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피식 웃음이 났다.
크림을 만드는 내 모습을 아내가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아내는 나의 뜻대로 만드는 과정이 잘 되어간다고 생각하는 안도의 웃음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가끔은 아내의 이런 오해가 고마울 때가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보지 않는 아내가 고마울 때.
웍에 재료들을 담고 조심조심 저어서 크림을 만들며 또다시 주문을 외웠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제발 먹어라 제발 잘 좀 먹어주라... 주문을 외었다. 몇 번이나 주문을 외우는지가 세기 힘들어질 무렵에 크림은 완성되었다. 열탕 소독을 한 유리병에 담아 식히는 과정을 거쳐서 아이에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