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용 테이블에서 바라본 모래재너머 마당 쪽. 왼쪽이 살림집이다. 살림집 옆으로 텃밭이 있다.
나익수
"못 하겠더라고요. 유혹이 너무 많은 거예요. 주머니에 늘 얼마라도 현금이 있으니까. 어느 날 술을 한잔 먹고, '야,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집기를 그냥 다 부숴 버렸어요. 포장마차를 접고, 고등학교 졸업이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근데 검정고시는 인정을 안 해 줘요. 취직을 하기도 마땅치 않더라고요. 뭔가 졸업장을 요구해요. '아, 안 되겠다. 어쨌든 대학을 가야겠다' 마음먹었죠."
점수에 맞춰서 취직이 빨리 될 만한 경희호텔경영전문대학 조리과를 갔다. 88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되어 곳곳에 호텔이 세워지던 때였다. 빨리 취직할 수 있어 보였다. 요리 실력을 인정받았는지 1학년 때부터 미국대사관 클럽의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1985년 2학년 때는 쉐라톤워커힐호텔 조리 부서로 가서 정식 요리사가 되었다. 하지만 북가좌동 집에서 너무 멀었다. 마침 3년 뒤, 집에서 가까운 스위스그랜드호텔이 문을 열면서 이곳으로 옮겼다. 승진이 빨랐다. 헬퍼(helper), 서드(third), 세컨드(second), 퍼스트(first) 쿡까지 갔다.
어깨 너머로 눈치껏 배우기만 하지 않았다. 선배 요리사와 외국인 요리사들한테도 많이 배웠다. 그들이 가진 자료나 요리책을 얻어 복사하여, 글은 몰라도 이미지로 눈치껏 공부했다. 굵직한 행사도 거뜬히 치러냈다. 요리 실무에서 가장 높은 퍼스트 쿡 자리에서, 그는 입사 4년째에 스위스그랜드호텔 노동조합 위원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