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이 산골마을에서 산다. 이웃들은 우리 집터가 흉하느니 좋다느니 한다. 집터가 좋고 안 좋고는 주인하기 나름이다. 주인이 성심을 다해 살면 좋은 집터로 변하기 마련이다.
김석봉
내가 이 산골에 들어오기로 작정하고 이삿짐을 쌀 때는 나이 51살이었다. 모두들 한창 일할 나이라고 했다. 나도 그렇다고 여겼고, 이후 이 산골에서 진주 시내까지 통근했다. 대중교통으로 오가려니 왕복 네댓 시간이나 걸렸다.
아침 6시 조금 지나 2km를 걸어 버스정류장으로 나갔고, 칠선계곡에서 나오는 첫차를 타고 읍내 버스터미널로 가고, 거기서 진주행 버스를 탔으니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출근길 역순으로 퇴근하면 밤중이었다.
그래도 나는 이 집이 좋았다. 직장을 버릴까, 이 집을 버릴까 하는 고민 끝에 나는 직장을 버렸다. 살아보면 살아지겠지 했다. 월급을 못 받게 된 현실은 나에게 크게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렇게 이 집은 나를 품었다.
"아따. 집터가 참 좋네요. 배산임수에 좌청룡 우백호가 척 그려집니다."
"수맥도 피하고 수구(水口)도 피했으니 이만한 집터가 어디 있겠소."
우리 집을 찾은 민박 손님 가운데 내로라하는 건축가도 있었고, 과학적 근거에 입각해 터를 본다는 지관(地官)도 있었다. 그들은 우리 집터를 이렇게 평했다. 뒷짐을 진 채 멀리 지리산을 내다보며 집터를 해설하는 그의 뒷모습이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심지어는 이 집 어느 방에서 아이를 가지면 좋을 것인가를 봐주겠다는 풍수쟁이도 있었다. 자식이 혼인 할 때 자기가 찍어주는 방에서 아이를 가지도록 하면 기막힌 운세를 가진 자손을 볼 거라고도 했다.
"매사에 조심혀. 그 집 전에 살던 사람이 망해서 나간 집이여."
"그 집 예전에 면장이 살던 집이여. 그 전에는 사오백 석 하는 부잣집이고."
마을 이웃들의 우리 집터에 관한 평가는 이처럼 극명하게 갈렸다. 어떤 이는 좋은 집터라 하고 어떤 이는 망한 집터라 했다. 내가 이사 오기 전 이 집은 빈집이었다. 농협 빚에 쫓겨 야반도주한 집이라 했다. 한밤중 1톤 트럭에 짐 챙겨 네 식구가 소리 소문 없이 도망친 집이라 했다. 말 그대로라면 흉한 집이었다.
그러나 내가 처음 이 집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마당을 뒤덮은 잡초와 부서진 문짝은 보이지 않았다. 장독대 흩어진 사금파리와 썩어 내려앉은 마룻장은 눈에 들지 않았다. 오직 마을을 휘두른 산맥과 앞으로 건너 보이는 지리산이 나를 포근하게 감싼다는 느낌뿐이었다.
"이 집터는 기가 참 셉니다. 그 기운을 누를 수 있는 사람이 차지하면 좋은 집터요,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자리 잡으면 필경 망할 집터지요."
이 집에서 대여섯 해 살았을 무렵 우리 집을 찾은 손님 가운데 지관이 있었는데 그이가 이런 평가를 내려주었다. 용과 범의 혓바닥 위에 자리 잡았고, 동고서저(東高西低) 지형이니 기운만 변치 않으면 순리대로 잘 흐를 집터라고 했던가.
그때야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제법 고집불통이기도 하고, 사뭇 그릇된 일을 만나면 물어뜯고 늘어지기도 하니 나 스스로 내 기운이 제법 셀 거라 여기던 차였다. 어쨌거나 이 집터에 얽힌 여러 평가 가운데 어쩜 나에게 딱 맞는 해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터란
며칠 전이었다. 한밤중에 마을방송이 요란을 떨었다. 산너머에 산불이 났으니 대피할 준비를 하라는 거였다. 마당으로 뛰쳐나왔다. 서쪽 능선으로 연기가 솟구치고 불꽃이 반사되어 하늘이 벌겋게 물들었다. 바람은 세차게 불었다. 금세라도 불꽃이 산을 넘어올 것만 같았다.
"이를 어째... 불이 넘어오면 어째요. 저 봐. 산 너머가 온통 벌겋네."
아내는 발을 동동 굴렀다. 마을방송을 듣고 이웃들도 하나 둘 골목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바람은 거칠게 몰아쳤다.
"불이 금방 넘어오겠는데? 그래도 우리 마을이야 괜찮지. 개울이 가로막고 있고, 논밭이 산 아래까지 이어졌으니 아무리 센 불길이라 해도 여기까지야 건너오겠어?"
"아, 저기 울진인가 거기 산불 안 봤어요? 불덩이가 산을 넘어 다닌다더마."
곁으로 다가온 예삐엄마도 발을 동동거렸다.
"우리 마을은 걱정할 거 없고, 저 너머 금대암 가는 길 가에 지은 집들이 큰일 나겠네. 산불이 넘어오면 저기 골짜기 안쪽 새로 지은 집들도 걱정이고."
몇 년 사이에 마을 뒤편 산자락엔 제법 많은 집이 들어섰다. 머구밭골 입구에 3채, 운골에 5채, 뒷골 초입에도 3채가 들어섰다. 다들 외지인들이 주말용 별장으로 쓰거나 귀촌한 사람들 집이었다. 숲과는 지근거리여서 울진 산불을 상기하면 영락없이 산불 피해를 입게 될 거였다.
"집은 마을 안에 지어야지. 마을이 그냥 마을이 아니거든. 그만큼 오랜 세월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재해로부터 안전을 검증받은 곳이 마을이야. 물 좋다, 경치 좋다 하며 여기저기 아무 곳에나 집을 지으니 재해 앞에서 문제가 생기는 거라고."
산불이 난 쪽 산언저리에 새 집을 지어 사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불이 집 앞 낮은 능선까지 건너왔다고 했다. 그곳의 매캐한 연기가 코끝을 스치는 듯했다. 다음날 아침 다행히도 불길이 일찍 잡혀 별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안도의 목소리를 전해 듣기까지 우리도 걱정에 잠을 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