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선별진료소와 임시선별검사소 신속항원검사 중단 이틀째인 12일 오전 서울역광장에 마련된 임시선별검사소에서 한 시민이 관계자에게 검체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녀와 며느리의 확진
날 밝으면 읍내 보건소에 가서 검사를 받아봐야겠다고 했다. 아내는 서둘러 약통을 꺼내 타이레놀과 인후통약을 챙겨먹었다. 다행히도 아내는 열이 없었다.
다음날 읍내로 나가 검사를 했는데 서하가 확진판정을 받았다. 신속항원검사 결과 저들 내외는 음성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쩌랴. 보름이는 서하를 돌보느라 함께 지내야 했고, 다음날 열이 나기 시작했고, 읍내로 나가 검사한 결과 역시 확진판정을 받아 버렸다. 보름이도 3차 접종까지 마친 상태였다.
마을에서 첫 확진자가 나왔을 때 마을방송이 요란을 떨었다. 2명의 확진자가 나왔으니 마스크를 끼고 이웃방문을 자제하라는 방송이 울려 퍼지자 모든 주민들 발길이 뚝 끊겼다.
확진자가 누군지 궁금했다. 오며 가며 만날 수도 있겠기에 알아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시끄러비아지매께 전화를 넣었다.
"누가 걸렸어? 두 명이라며?"
"아직 몰라. 내가 한 번 알아볼게."
"마을 안테나가 그것도 모르면 어떡해."
언제나 씩씩하던 시끄러비아지매의 목소리도 두려움에 가늘게 떨리는 듯했다.
점심나절이 되자 확진자 신상이 알려졌다. 서울에서 아들이 다녀간 집과 평상시 외부 접촉이 많은 집 노인네였다. 이런 시국에 뭐 하러 아들이 내려왔느냐며 이웃들은 볼멘소리를 했다.
확진자 신상은 비밀이라고 했지만 이 좁은 마을 안에서 어떤 경로로든 알려지기 마련이었다. 사람들은 확진자의 집 주변을 피해 다녔다. 그런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사나흘 뒤 또 2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또 사나흘 뒤 2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그렇게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하자 첫 확진자 이후 공포에 떨던 마을 분위기도 많이 누그러졌다. 자가격리기간이 끝난 확진자가 마스크를 끼고 골목에 출현하자 처음엔 데면데면하던 관계가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도 나누는 상태로 바뀌었다.
"아유, 코로나 그거 한 번은 걸려야 한다드마.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진즉에 걸려 나아버리는 것이 마음 편하다더라고."
심지어는 마을 노인네들 생각이 이렇게까지 변해 있었다.
이럴 즈음 서하와 보름이가 확진되었으니 마을 사람들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게다가 서하 유치원에서 감염되었다는 사실은 측은지심까지 유발해 오히려 안타까워하는 노인네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네. 만약 우리 집에서 먼저 확진자가 나왔다고 해 봐. 동네가 난리 났을 걸?"
"민박이고 카페고 온갖 험담과 손가락질에 시달려야 했겠지."
사실 그랬다. 마을 첫 확진자가 우리 가족이었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첫 확진자가 우리 가족이었다면
마을 한복판에서 카페와 민박을 운영하니 드나드는 외지인이 많다. 돈 많이 번다는 말이 돌자 일부 노인네들은 우리 카페와 민박을 시기하기까지 했다. 그런 노인네들이 떼로 몰려와 어떤 행패를 보일지 모를 일이었다.
퍼뜩 수년 전 일이 떠올랐다. 마을일로 이런저런 민원을 자주 넣던 귀촌인이 있었는데 몇몇 노인네들의 선동으로 경운기며 트랙터를 끌고 와 집 입구를 막아 버리기까지 했다. 심지어는 마을동회에 불러내어 욕설과 모욕으로 협박하기도 했고, 술에 취해 주먹질까지 해대는 주민도 있었다.
"아무튼 동네 노인네들이 먼저 확진되었으니 우리로선 다행한 일이야."
"참나. 어째 사람이 이리도 이기적일까? 미안한 마음도 없어?"
"이게 다 코로나가 만든 세상이라고. 배타적이고 이기적이어야 살아남는 세상."
우리 부부의 후속대화는 이처럼 한심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창궐했다. 지구촌 5억 명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이 나라도 만만치 않아 1500만 명 넘는 확진자를 보였다. 국민 3명에 1명꼴인 셈이다.
2년여 전 처음 이 바이러스가 세상에 알려지고 지금까지 국민들은 별별 고생을 다했다. 이 역병에 걸리면 폐가 시커멓게 타 버린다는 흉흉한 소문에 벌벌 떨었다.
여기저기서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확진자가 나온 도시의 텅 빈 거리를 보면서 모두들 숨을 죽였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야 했고, 주민등록증까지 내보여야 겨우 3장의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방역당국의 조치는 강경했고, 강압적이었다. 누구도 그런 조치에 토를 달지 않았다. 역병에 대한 공포에 모든 개개인의 자유와 양심은 저당 잡혔다. 확진자의 동선에 노출된 사람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고, 확진자가 다녀간 가게는 망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백신이라는 게 나왔다. 이 나라에 첫 백신이 도착했을 때 텔레비전 뉴스 앵커의 들뜬 목소리를 들으며 '이제는 살았구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