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준 시인의 시집
걷는사람
올갱이 한 됫박 잡아 일일이 까서 올갱이 국을 끓여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의 저는 올갱이 국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국보다는 된장에 짭조름하게 끓인 올갱이를 속살을 빼먹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었습니다(맛보다는 재미였습니다).
다슬기를 잘 까는 것도 기술입니다. 다슬기는 우렁이처럼 크지도 않고요, 자잘한 것들은 정말로 작아서 까는 것이 일입니다. 저는 바늘을 사용했었는데요, 바늘로 다슬기의 속살을 찌르고 다슬기를 돌돌돌 돌리면 나사처럼 푸른색 속살이 빠집니다. 속살이 끊어지지 않고 쑥 빠지면, 덩달아 기분도 좋아집니다. 이렇게 몇 개를 잘 까면, 의기양양합니다. 참, 별것 아니었는데요.
속살이 잘 빠지기보다 중간에 끊기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럴 경우 바늘로 파는 것을 포기하고 입으로 쑥 빨아보기도 하는데요, 잘 빨리지 않습니다. 다슬기 끝부분을 깨물어 구멍을 내어 쭉 빨아야만, 그나마 빨리는데요. 양이 적어서 이렇게 빨아봤자, 소량의 건더기가 전부입니다. 어떻게 보면, 입안에서 느껴지는 것도 된장 맛이 전부입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 내 삶이 저 다슬기를 빼먹는 것과 많이 닮았습니다. 그만큼 소소하고 보잘 것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 소소함 가운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행복'이었습니다.
입 안 가득 채울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비싼 향신료처럼 특별한 맛을 지닌 것도 아니었지만, 삶의 소소함이 줄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의 행복. 어쩌면 제가 올갱이 국을 그리워하는 것도, 저 소소한 행복의 맛이 그리웠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시를 읽고 산문을 쓰는 동안에도 침이 고입니다. 박남준 시인에게 오늘 이 시를 읽겠다고 허락을 구하였는데요, 이메일로 다슬기 한 그릇을 보내왔습니다. 까놓은 다슬기의 양이 상당해서 아욱을 넣고 국을 끓이면 여러분과 함께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한솥 가득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