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응원을 온 가족들과 함께. 마라톤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쉬지 않고 달리듯 몸을 쓰던 그의 삶도 지치지 않고 열정이 넘쳤다. 지금은 달리기를 멈췄다. 열정 넘치던 삶도 달리기를 멈추는 듯해 안타깝다.
김형숙
지기 싫어하는 성실의 아이콘
결혼하고 잠깐 서울살이를 하다 돌아와 형이 하는 활어 유통을 도왔다. 고기를 배달하는데 아무도 제대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 고기가 뭔 고기인지 이런 거를 안 가르쳐 주는 거예요. 그럼 나가 다 알아서 해. 배달 간 횟집 장부 확인하면서 이게 뭔 고기인지, 단가는 얼마인지, 하나하나 나가 다 터득하게 된 거죠. 또 지기 싫으니까 고기마다 어느 정도 되면 몇 킬로그램인지 이런 것까지 눈대중으로 다 익히고. 또 횟집에 다니니까 고기도 뜰 줄 알아야 해요. 근데 주방장이 안 가르쳐 줘요. 그래서 죽은 고기 있으면 집에 와서 밤에 혼자 연습했어요."
남편 얘기를 듣자 김형숙씨가 '동수씨는 집요하면서도 성실한 사람'이라며 거들었다. 남에게 어설퍼 보이거나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었을 테다. 지금까지 그는 육상, 택시 운전, 싱크대 자재 납품, 활어 유통, 횟집, 화물차 기사를 하며 제대로 잘하기 위해 집요하게 열심히 성실히 일했다. 적극적이었다. 그만큼 삶에 자신감이 있었던 듯하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활어차를 운전하다 돈을 빌려 횟집을 시작했다. 장사가 안 되지는 않았지만, 생활이 어려운 후배들이 있으면 써버리기도 하고, 물건값을 제대로 못 받은 경우도 있었다. 그랬으니 손에 남은 게 없다시피 했다.
횟집을 하면서 네 식구가 가게 한쪽 다락방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담배 냄새, 생선 비린내 등 초등학생 두 딸에게는 정말 힘들었을 시절이었겠다. 그래서인지 두 딸은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때 당시를 짐작케 하는 김형숙씨 글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죽은 생선 하나도 손질 못 했던 내가 팔딱팔딱 뛰는 활어를 잡아서 포를 뜨고 썰고 배달까지 하며 악착같이 살았던 시간이었다. 너무 바빠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을 때면 어린 딸들이 소시지를 볶고 계란프라이도 해서 도시락을 싸 오곤 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주일 내내 쉬는 날 없이 일해도 힘들다고 느끼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못이라도 하나 박으면 집주인이 내려와서는 '남의 집 살면서 못 박고 사는 것 아니'라고 했다.
또 사용하지 않는 외부 화장실에 자전거를 뒀는데 태풍이 와서 화장실 유리창이 깨졌다. 그러자 우리 자전거 때문에 유리창이 깨졌다며 집주인이 수리비를 받아 갔다. 그래도 전혀 서럽지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집주인 구박받을 일도 없고 휴일마다 꼬박꼬박 쉬고 두 딸은 이제 내가 돌보지 않아도 될 만큼 컸음에도, 내 삶은 왜 이리 고달픈 걸까.
- <진실의 힘> 누리집 "내 남편은 중증 트라우마 환자입니다"에서
생존자이기 전에 피해자
사려니숲길 안내소에서 일한 지 딱 4년이 되었다. 아름다운 사려니숲길에서 일하니까 좋겠다 싶지만, 그는 여전히 약과 수면제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도 숲에서 일하면서 조금은 안정이 되어 가지 않을까 싶어 꿈이나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없어요. 미래에 대한 그런 두려움이나 이런 것들이 있어서 지금은 뭐 세우고 말고 없이 지금 있는 자체만도 힘들어서, 세울 뭐가 전혀 없어요."
김동수씨 얘기를 들은 김형숙씨가 덧붙였다.
"전에는 그래도 자신감이 있어 보였죠. 근데 딱 1년 사이에 바뀌었어요. 작년(2021년)에 그 7주기 전에 수면제 백여 알을 먹으면서 그때부터 이렇게 달라져 버렸어요. 예전에 남편이 집에 둔 다육식물 때문에 맨날 싸웠어요. 그만 사 오라고. 근데 다 뽑아 버렸잖아요. 또 자기 침대 만든다고 여기 나무 잘라 놓은 거 집에 실어 놨는데, 땔감 하라고 다 보내 버리고. 지금은 아무것도 관심이 없어요, 진짜. 차라리 나 눈치 보면서 다육이 사 오고 그럴 때가 나았지… 지금은 마라톤도 안 하지. 내가 봐도 무슨 낙으로 사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김동수씨는 자해를 다섯 차례나 시도할 만큼 분노가 컸다. 세상에 말을 걸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수면제를 먹어도 못 자니까 미칠 것 같아서, 푹 자고 싶어서 수면제를 백여 알 먹어 버렸다. 분노에서 불안으로 바뀌고 만 셈이다. 그는 여전히 아파하고 있다.
8주기가 다가오면서 김동수씨가 더욱 예민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럴수록 아내 김형숙씨는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낼 수밖에 없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