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암환자로서 오른 첫 무대 '재회'제3회 커뮤니티댄스 페스티벌 '몸, 연결과 소통'(총연출 및 안무코칭 최보결)이 열린 2021년 12월 25일 경복궁아트홀, 나는 암 치료 과정 중 깨달은 몸의 이야기를 담은 '재회'로 인생 첫 춤 무대에 올랐다.
곽승희
춤추는 암환자로서 나의 본격적인 시작점은 앞서 언급한 작년 겨울, 무용 비전문가에게도 무대를 열어주는 커뮤니티댄스 페스티벌(2021.12.25~26)을 준비하면서였다. 당시 항암 약물 치료가 중반 이후를 향해 가던 시기라 주변에선 걱정들을 꽤 보냈다.
주사 약물로 신체 기능이 다 떨어진 상태일 텐데 연습한다고 무리하는 건 아닌지, 연습 장소와 공연장을 왔다 갔다 하다가 혹시 코로나에 걸리면 항암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데, 그러면 지금껏 받은 치료가 물거품이 되지 않는지 등등.
주변의 우려는 알지만 나는 이 공연 기회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일단 공연 리허설 날짜와 약물 치료 날짜가 겹치는 바람에, 주치의에게 한 주를 쉬어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았다. 매주 같은 요일 비슷한 시간대, 병원 침대에 누워 서너 시간 동안 몸에 들어가는 항암 약물을 보는 일은 정신적으로 쉽지 않다.
이처럼 고역인 일에 공식적으로 휴가를 받은 셈인데 어찌 가지 않고 배길까. 게다가 이 춤 공연은 내 인생 전환점을 기록하는 행위였다. 공연 제목은 <재회>, 암 치료 과정을 통해 내 몸을 다시 만나게 된, 내 몸이 들려준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다.
사실 갑작스럽게 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그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암 수술을 받은 후에도, 제거한 암 덩어리에서 이미 침윤(조직으로 침입하여 번짐) 상태임이 드러나서 항암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도, 나는 내 '몸'에 대해 별생각을 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암환자가 됐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 모든 과정을 공부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치료도 수월하게 받으리라 예상했다. 항암 부작용으로 대머리가 되는 일도, 치료 과정 중 일어나는 변화의 하나로 의연하게 맞이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가끔 모자를 깜빡하고 화장실에 들어가면, 거울 속 내 모습에 내가 화들짝 놀랐다. 신체 일부분이 사라졌을 뿐인데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내 생각과 상관 없이 반려 고양이 '웅미'는 집사의 두피 털이 있든 없든 매일매일 무릎에 올라왔다. 반려자 '한몬' 역시 나의 대머리에 뽀뽀를 해주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나를 사랑하는데, 정작 나는 스스로를 사랑하기는커녕 거울 속 내 모습을 마주 보기도 어려웠다.
항암 약물 치료는 3회 차 만에 멈춰야 했다. 4회 차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간 날, 아직 주사를 맞지도 않았는데 주사 후 부작용인 구토가 '나도 모르게'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 치료가 내 생명을 지속하기 위해 꼭 필요하기 때문에 감사히 받자, 꼭 주사를 맞아야 한다, 합리적인 이유를 아무리 갖다 댄들 소화기관은 경련을 멈추지 않았다. 주치의는 몸이 트라우마 상태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그때 깨달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머리와 몸이 분리되었구나.
머리로는 용기 있고 담대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정작 내 몸은 이 상황이 무서워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몸이 내 몸인데, 이걸 이제야 눈치챘다. 따로따로 멀어져버린 내 삶의 조각을 통합해야했다. 그 첫 발자국은 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이었다.
공연에서, 무대 위 나는 거울 속 나를 보며 춤을 추었다. 관객석을 뒤로한 채 무대 소품으로 마련된 의자에 앉아, 역시 무대 소품으로 올라온 거울에 시선을 던졌다. 전반부는 '괜찮지 않다'고 노래 부르며 춤췄고, 후반부는 가발을 끌어 내리며 춤을 췄다.
내 몸은 잘못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