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명원화실
비룡소
글이 하나도 없어도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읽히는 책, 이런 '이수지 세계'의 시원은 어딜까? 궁금해 도서관을 뒤지다 2008년 발간된 <나의 명원 화실>를 만나게 되었다. '어떤 그림이 뽑히는 그림인지 잘 알고', 그래서 미술 시간이 끝날 무렵이면 언제나 자신의 그림이 벽 뒤에 걸리던 아이 이수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의 명원 화실>이다.
'훌륭한 화가'가 되기 위해 작가는 어머니를 졸라 오래된 상가 삼층에 있는 화실에 다닌다. 그 화실의 화가는 '긴 머리에 까만 색 빵모자를 눌러 쓴' 사람, 어린 작가가 생각했던 '화가다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화가는 그 잘 그리는 어린 작가의 그림에 일언반구 말이 없다.
크레파스 대신 연필을 주고 '세상을 뚫어지도록 열심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렇게 열심히 살펴본 것이 내 마음 속에 옮겨지면 그걸 조금씩 조금씩 그려나가면 된다'고 '바가지 안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담겨있다'며 주구장창 바가지만 그리라고 한다.
그러더니 야외 스케치를 간 어느 날, 그 화가다운 화가 선생님은 물을 그려보라며 말한다. '물은 색깔이 없는데 어떻게 그리지?' 고민하던 작가, 마치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진짜 화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 속에 잠긴 것, 물 위에 뜬 것과 물 위에 비친 그 모든 것들이 물을 물처럼 보이게 만드는 거야, 그것이 물을 그리지 않고서 물을 그리는 거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