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죽음 앞둔 파트너 곁에서 쫓겨날까 두려웠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에게 보내는 성소수자의 편지] 인권에는 '나중에'가 없습니다

등록 2022.04.27 11:51수정 2022.04.28 13:56
4
첫 발의 후 15년이 지난 오늘날, 여전히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그 사이 차별과 혐오선동을 이용하거나 방치해 온 정치는 한국사회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국회 앞 평등텐트촌 농성과 미류(인권운동사랑방), 종걸(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두 인권활동가의 단식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고, 여러 핑계를 앞세워 평등을 미루고 있다.

차별금지법의 4월 제정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세력의 폭언을 제일 앞에서 맞아야만 하는 성소수자들이 더불어민주당의 책임과 역할을 요구하기 위해 4월 21일부터 법안 공포가 가능한 5월 2일까지 매일 한 명씩 공개적으로 편지를 적어 보낸다.[기자말]
a

캔디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박광온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그리고 박주민 국회의원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은평구에 10여 년 가까이 살아가고 있는 바이섹슈얼, 캔디라고 합니다. 

이렇게 정치인분들께 편지까지 쓰게 되다니 기분이 참 복잡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며칠 전에도 저는 국회 앞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집중문화제에 다녀왔거든요. 거기에 모여있는 수백 명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다보니, 괜히 울컥 하더라고요. 이 아름답고 따사로운 봄날, 우리는 여전히 뼛속까지 시린 차별을 느끼며 여기에 모여 있구나 싶어서요.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차별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차별금지법이 왜 지금 당장 필요할까요?

"다 알지만, 지금 사회적 공감대가….", "다 알지만, 지금 선거가…" 이런 말을 하신다면 아직도 차별이 뭔지 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한지 모르시는 겁니다.

전 지난해 제 파트너를 떠나보냈습니다. 간병을 하고 장례를 치르는 모든 순간순간 저는 많은 것을 '자연스럽게' 포기했습니다. 유산도, 연금도, 장지도, 모든 것들을 다 파트너 가족들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성파트너는 법으로 묶일 수 없으니 '당연히'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파트너의 마지막을 지키는 것, 그것만은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이 펜데믹의 시대에 호스피스 병동은 딱 한 명의 보호자만을 허락했고, 법적 배우자가 없는 애인의 가장 가까운 가족은 그녀의 어머니였습니다. 다행히 어찌저찌 그녀의 마지막을 함께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허락되던 그 순간까지, 제 삶은 지옥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 사람의 파트너이니 나를 우선해달라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순간 파트너의 가족들이 저를 쫓아낼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a

파트너를 떠나보내며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자신을 숨기고 사는 제 지인은, 40대가 돼서도 주변에 성소수자 친구가 거의 없는 것을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회사에서 노처녀 소리를 듣고, 집안에서 문제있는 자식 취급을 받고, 주변 사람들에겐 사회성 없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그이에겐 오래된 애인이 있고, 애인과 함께 꾸려가는 가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를 드러내는 순간 회사에서,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외면당하고 내쳐질지도 모르는 한치 앞도 불투명한 상황에서는 차라리 나를 지우는 것이, 많은 관계를 만들지 않는 것이 더 안전하고 나은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진행된 성소수자의 나이듦 설문조사에서 '성소수자로서 지난 1년간 노후 준비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해 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있다'는 대답은 고작 22%뿐이었습니다. 대국민 조사의 같은 질문, 같은 응답은 42.3%로 무려 2배나 차이가 났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조차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은 내일을 상상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 조심해야 하는 삶에서 무슨 꿈을 꾸고, 미래를, 노후를 상상하겠냐고요. 

이성애자들이 집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미디어에서 다양한 이성애 결혼과, 사랑, 친구들과 관계 맺기, 함께 나이들어가는 것과, 노년에 돌봄을 받는 것 그리고 장례를 치르는 것을 배워갈 때, 성소수자들은 10대에는 학교에 숨기는 것, 20대에는 직장에 숨기는 것, 30대에는 결혼 질문을 잘 넘기는 법을 익혀갑니다. 그리고 40대가 넘어가면서는 나이가 먹을 수록 더 고립될 것을 두려워하거나, 혹은 외면합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매해 배우는 것은 어떻게 숨기고, 가리고, 말하지 않을 수 있는가 입니다. 

그렇기에 성소수자들은 일상의 많은 곳에서 '안전'을 체크합니다. 친구와 연애 이야기를 할 때, 학교에서 인권문제에 의견을 낼 때, 가족과 주말 계획을 나눌 때, 길을 걷고 있을 때, 병원에 갈 때, 죽은 친구의 장례식에 갈 때도, '안전'을 체크하고 '언어와 행동'을 점검합니다. 혹시라도, 실수로 자신을 드러내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차별받는 삶입니다. 

튀지 않아야 하고, 내 삶을 숨겨야 하고, 드러내는 것을 최소화 해야 한다고 나 스스로 가두게 되는 삶이 바로 차별받는 삶입니다. 차별받을 것이 두려워, 내가 나의 모습을 버리고, 외면하고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바로 차별받는 삶입니다. 

저는, 더 이상 저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젠 더이상 불안해 하며 살고 싶지 않습니다. 파트너를 친구라 소개하고 싶지 않습니다. 트랜스젠더 친구의 장례식에서 친구의 수의가 무엇이 될지 안타까워하고 싶지 않습니다. 집에서 쫒겨날까봐 두려워하고 싶지 않고, 가족을 떠나 숨어살아야 하나 고민하고 싶지 않고, 다른 나라에 이민가서 당당하게 살고 싶지 않고, 지금, 여기서,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냥 저런 생각들 하나도 없이 살아가고 싶습니다. 차별받을까봐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다행히 사회는 점점 반차별의 감각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누구든 차별받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아가고 있습니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삶이 조금은 지금보다 불편할 수 있지만, 그런 삶이 우리 사회를 더 찬란하게 할 것이라는 것도 익혀가고 있습니다.  

물론, 절대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삶을 실천하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무심결에 어떤 차별은 가능하다고 들으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스쳐 지나가듯 어떤 이들에게 '감히 너 같은 게'라는 말을 듣기고 했고, '저런 애들은 역시'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당해도 싸' 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자연스레 '어떤 사람'은 차별받을 만하다, 차별받을 짓을 한다, 이건 저 사람이 그럴 만했으니 차별해도 된다, 를 익혀왔던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되새겨 가며 새겨야 할 것은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똑같이 존엄하다'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쉽지 않을 것입니다. 차별할 의도가 없었다 생각하며 억울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한번 배워나가야 합니다. 인권에는 나중에가 없고, 인권에는 저사람 먼저가 없고, 인권에는 저것만 빼고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새겨왔던 차별의 무감각을 떨쳐내는 것이 쉽진 않겠지만, 존엄과 평등의 감각을 익히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삶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은 그 한걸음 한걸음에 힘을 실어줄 것입니다. 

박광온 법제사법위원장,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그리고 우리동네 박주민 국회의원님. 

15년 전, 2007년, 차별금지법을 만들기 위해 싸우던 사람들은, 그때를 기록하며 '지금 우리는 미래를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2022년 대한민국의 가장 치열한 이곳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를 쌓고 있는 국회에서, 대한민국의 존엄과 평등의 미래를 만드는 것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함께 해주십시오. 시간이 지나 어제를 돌아봤을 때, 후회와 수치가 남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모두,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정치를 하고 계신것 아닌가요? 

이제는 변명이나 답변이 아닌, 실천을 하실 때 입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 행동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2022. 4. 27. 
차별금지법이 있는 나라에서
나이들어가고 싶은 캔디 드림 
 
a

2021. 11. 25. 차별금지법 이어말하기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덧붙이는 글 차별금지법 4월 제정을 촉구하며 성소수자들이 매일 공개편지를 보냅니다.
#차별금지법 #평등법 #성소수자
댓글4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대통령 온다고 수억 쏟아붓고 다시 뜯어낸 바닥, 이게 관행?
  2. 2 제발 하지 마시라...1년 반 만에 1억을 날렸다
  3. 3 '한국판 워터게이트'... 윤 대통령 결단 못하면 끝이다
  4. 4 "쓰러져도 괜찮으니..." 얼차려 도중 군인이 죽는 진짜 이유
  5. 5 이러다 나라 거덜나는데... 윤 대통령, 11월 대비 안 하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