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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정의사회'는 민주모독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 33] 폭압이 심하고 어둠이 짙어도 결코 희망을 포기할 순 없었다

등록 2022.05.09 15:45수정 2022.05.0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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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민정당 전당대회.
1987년 민정당 전당대회. 국가기록원
 
1980년대 초 한국사회는 무모함과 무도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그 중의 하나는 신군부 쿠데타세력이 81년 1월 15일 민주정의당을 창당하면서 '정의사회구현'을 강령으로 내걸은 일이다.

일본군 장교출신 박정희가 한때 '민족적민주주의'를 앞세운 것이나, 히틀러가 나찌당을 만들면서 '게르만민족주의'를 내건 것,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당이 강령에 상디칼리즘과 내셔널리즘 묶은 것만큼이나 황당하고 가당찮은 강령이었다. 

5공 치하 대한민국의 곳곳에 '정의사회구현'이란 현수막이 나붙고, 이것은 관제 행사장의 단골 구호가 되었다. 말이나 구호는 주체와 용어가 일치할 때라야 그 접학성이 주어진다.    

공자 연대에 사람을 죽여 생간으로 회쳐먹었다는 도척(盜跖)이 인의를 거론한다거나, 분서갱유를 일삼은 진시황이 학문을 말한다면 격이 맞지 않듯이, 전두환 세력의 '정의구현'이나 민주정의당 창당은 세상의 조롱거리였다.

누구보다 가슴아파한 이는 함세웅과 정의구현사제단의 성직자들이었다. '정의'의 가치가 전도되고 도둑맞은 것이다.

전두환을 위한 들러리로 숱한 정당이 생겨나고 파출소마다 정의사회구현이라는 구호를 내걸었으니 이것은 참으로 민주인사들에 대한 모독이었다. 정의사회구현, 물론 좋은 말이다. 그런데 이 좋은 말이 전두환 독재정권의 전매용어가 되었으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언어가 부패하고 말이 상하면 사상까지도 썩는다고 했다. 모든 것이 썩어가는 그러한 한 해였다. (주석 4)

폭압이 심하고 어둠이 짙어도 결코 희망을 포기할 순 없었다. 기독교는 원래 부활의 종교이기에 더욱 그랬다. 1981년 4월 5일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사순절을 맞아 평신도 지도교육의 일환으로 월례강좌를 개최하면서 함세웅에게 특별 강론을 의뢰했다. 


그는 강론을 통해 "한국교회는 과연 부활의 희망과 기쁨을 주어왔는가?" 라고 물으면서 "희망을 주는 교회는 온갖 불의와 허위, 위선, 자만, 폭력, 위협, 총칼을 거부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누가 진정으로 우리의 이웃입니까?〉란 주제의 이날 강론은 "△ 사랑의 실천은 버려진 이웃을 통해서 △교회는 지금 권력자의 들러리가 아닌지? △우리도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합니다."란 소제목 아래 진행되었다. <교회는 지금 권력자의 들러리가 아닌가?>의 일부를 소개한다.

한국 교회는 억눌린 형제자매의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일차적 사명은 복음선포이며 교회의 근본 소명은 신자들의 사목이며 교회의 존재 이유는 성화(聖化)라는 등 여러 주장을 내세워 감옥에 갇히고 짓눌리고 억압받는 많은 형제자매들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 교회는 진정 어느 부류의 사람에게 이웃이 되고 있습니까? 권력자들의 둘러리가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하느님 누가 진정으로 우리의 이웃입니까? 강도 만난 사람을 외면하고 지나간 사제와 레위의 행동은 오늘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진실을 외치고 진실 때문에 감옥으로 끌려가 고통당하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우리 사제는 진정으로 그들의 이웃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교수가 강단을 빼앗겼을 때, 언론인이 펜대를 빼앗기고 거리로 쫓겨났을 때 우리는 그들의 이웃이 되어 주지 못하였습니다. 정치인들이 정치적 자유와 비판의 소리를 빼앗기고, 변호사들이 변호직을 박탈당했을 때도 우리는 그들을 외면하였습니다. 문인과 예술인들이 표현의 자유를 빼앗기고, 노동자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았을 때도 우리는 그들을 외면하였습니다. 광주항쟁을 통해 몇 사람이 죽어갔는지도 모를 그 엄청난 비극의 현장을 우리는 또 외면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외치는 사제, 항상 자비와 사랑을 베풀라고 강론하는 사제, 가난한 사람, 억울한 사람, 병든 사람, 죽어가는 사람을 도우라고 권고하는 사제, 그러한 사제들이지만 진정으로 그들의 이웃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빤히 쳐다보면서도 외면한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이었습니다." (주석 5)


주석
4> <암흑속의 횃불(4)>, 345쪽.
5> 앞의 책, 381~382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함세웅 #함세웅신부 #정의의구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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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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