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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문화원방화사건으로 다시 현장에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 34] 정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등록 2022.05.10 15:39수정 2022.05.1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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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으로 1심에서 사형을 구형받을 당시의 김현장씨(위). 아래쪽은 문부식씨. 1982년 8월 2일치 '경향신문'.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으로 1심에서 사형을 구형받을 당시의 김현장씨(위). 아래쪽은 문부식씨. 1982년 8월 2일치 '경향신문'.경향신문
 
요즘은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한국 근현대사에서 어두운 시기마다 여명의 횃불을 켜든 것은 학생들이었다. 1980년대도 뒤지지 않았다. 전두환 무리의 '싹쓸이 피바다'로 기성세대가 움츠리고 있을 때 가장 먼저 금제(禁制)의 철문을 연 것은 대학생들이다. 

3월 19일 서울대의 시위를 시작으로 5월 중순까지 성균관대, 부산대, 동국대 등에서 8차례 시위가 일어나고, 5월 27일 서울대 시위 도중 김태훈이 "전두환 물러가라"고 외치며 도서관 6층에서 투신자결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정부와 제도언론에서는 하나같이 학생시위가 민주질서를 부정하고 좌경화했다고 매도하고 강경진압을 촉구했다. 한번 터진 민주화의 봇물은 틀어막기 쉽지 않다. '봇물'은 이듬해(1982년) 3월 18일 부산 미문화원사건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은 천주교 그리고 정의구현사제단과 연결되기에 이르렀다.

1982년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부산지역의 대학가에 시위가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대학생들은 3월 2일 〈살인마 전두환 북침 완료〉라는 제목의 "부산시민들이여 총궐기하자. 군부 정권 타도하자"는 내용의 벽보 20매를 부산대의대 부속병원 정문 앞 육교 기둥 18개소에 붙인 뒤 부산 시내서 유인물을 배포하였다. 3월 18일에는 김현장, 김영애, 문부식, 김은숙, 박정미가 12.12사태 때 신군부의 군사 행동을 방조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이 진행 중이던 1980년 5월 23일 위컴 한ㆍ미연합군사령관이 연합사 소속 병력의 광주 시위 진압에 동의하는 등 미국이 광주학살 및 전두환 신군부의 집권을 지원ㆍ인정한 것에 대해 항의하면서 부산 미문화원에 방화하였다.

이들은 부산 미문화원 현관에 휘발유를 붓고 방화한 후 "미국은 더 이상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나라"는 내용을 담은 전단을 살포하였다. 이 사건으로 당시 문화원 내에서 책을 보고 있던 동아대생 장덕술이 사망하고 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주석 6)
 부산근대역사관에 전시된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현장 검증 사진.
부산근대역사관에 전시된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현장 검증 사진. 부산근대역사관
 

전두환 정부가 현상금 2,000만 원을 내걸고 이들의 검거에 나섰다. 배후인물로 알려진 김현장을 원주교구 최기식 신부가 22개월간 은닉시켜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똥이 천주교로 튀었다. 최 신부는 3월 30일 함세웅을 만나 주범으로 수배당하고 있는 문부식과 김은숙의 자수문제를 논의했다. 다음날 함세웅은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만나, 자수할 경우 고문을 받지 않고 법률적인 지원의 보장을 확약받았고, 4월 1일 두 사람은 자수했다. 

정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혹독한 고문을 한 것은 물론 4월 5일 최 신부 등을 구속기소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관련 함세웅은 31일 기자회견에서 "성직자는 비록 범법자라도 숨겨줘야 한다"면서 자수중재는 어디까지나 문무식ㆍ문부식과 김은숙의 의사에 따른 것임을 밝혔다. (주석 7)


정부는 이참에 천주교를 척살하려는 의도였는지, 범인도피 등의 이유로 최기식ㆍ이병돈ㆍ김병식ㆍ김병식ㆍ김봉희ㆍ정호경ㆍ송기인ㆍ황상근ㆍ유강하ㆍ조정현 신부와 이창복 가톨릭농민회장 등을 연행조사하고, 최기식신부를 구속했다.

4월 12일 정의구현사제단이 "사제를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돌을 던질 수 없는" 사제의 입장을 밝히고, 15일에는 천주교 최고의결기구인 주교회의 상임위원회가 최 신부의 행위가 신앙양심에 따라 정당함을 담화문을 통해 확인했다. 


함세웅은 정부가 신부들을 구속하고 자수한 사람들을 고문하는 등 당초의 약속을 지키지 않자 7월 26일 '증언'을 통해 〈정부의 공신력은 땅에 떨어졌다〉고 비판했다. '증언'의 마지막 대목이다. 

본 사건에 대한 소견

1. 이번 사건으로 교회가 당한 피해가 너무나 크다.
2. 그리고 정부는 공신력을 지켜주지 않아 슬프다.
3. 또한 피해 당사자들에 의하여 고문한 사실이 엄연한 데도 고문을 안했다고 발뺌하는 자세를 보면 과연 우리 경찰과 기관원들은 참다운 인간인가, 비인간인가 저으기 의심스럽다.
4. 이 사건을 모두 용공시하기에 슬프다. 또한 이 사건의 재판을 맡은 담당자가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더욱 슬프다.
5. 무엇보다도 교회와 정부와의 대화 단절이 더 없는 유감이다.
6. 나는 최기식 신부와 똑 같은 입장으로 범인이 교회를 찾아오는 것은 '양심이 살아 있다'는 표시로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즉 성역의 존재를 믿는다. 

그 외 의견들

1. 인간의 행위 자체는 미워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은 절대로 미워해서는 안 된다.
2. 이 사건은 신부가 주선하지 않으면 해결이 안되었다고 본다. 현상금을 받은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한다고 보는가?
3. 그리고 북침 준비완료란 의미는 광주사건의 잔인성을 표시하는 것으로 알아들어야 하며 88년 올림픽 반대 표시는 정치 경제적 측면의 반성을 촉구하는 것으로 이해돼야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이런 반대의견도 자유롭게 표시할 수 있지 않겠는가? (주석 8)


주석
6> <한국민주화운동사 연표>, 403쪽, 한국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6.
7> <어둠속의 횃불(5)>, 46쪽.
8> 앞의 책, 156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함세웅 #함세웅신부 #정의의구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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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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