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 주교가 구속되면서 사제단은 시대의 소리를 듣고 각성했다. 그리고 정의구현사제단은 박정희 정권을 겨냥한 양심의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사진은 구속되는 지학순 주교)지학순 주교가 구속되면서 사제단은 시대의 소리를 듣고 각성했다. 그리고 정의구현사제단은 박정희 정권을 겨냥한 양심의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사진은 구속되는 지학순 주교)
정의구현사제단
80년대의 한국 교회는 억눌린 형제의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일차적 사명은 복음 선포이다. 교회의 근본 소명은 신자들의 사목이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신자들의 성화이다' 등 여러 가지 주장을 통하여 감옥에 갇히고, 짓눌리고, 억압받는 많은 형제들을 외면할 수 가 없습니다. 한국 교회는 진정으로 어느 부류의 사람에게 이웃이 되고 있습니까? 권력자의 들러리가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 아픈 그 현장에서 자식, 부모, 형제, 친척을 잃고 울부짖고 있는 그 가족들에게 우리는 진정한 이웃이 되지 못했습니다. 작년 5월 광주 사태의 현장에 있었던 어느 성직자는 그 비참한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현장으로 달려갈 수 없었습니다. 그때 문득 기억에 떠오른 것이 바로 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였답니다. 사제는 말만 하는 사람이지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하면서 반성했다 합니다. 그 성직자는 사랑의 실천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가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여기에 바로 신앙인의 고뇌가 있습니다.(<과연 이웃은 누구인가>)
이 땅, 분단의 조국, 아픔의 현실, 눈물겹도록 상처뿐인 이 한반도 우리 조국에, 교회는 우리 겨레 모두에게 빛이기를 열망하고 다짐해야 합니다. 이 땅은 고립된 땅이 아님을 확인하며 세계 공동체를 향한 교회의 보편성을 다시금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이든 자기 조국을 위한 진실된 애국자는 국경을 뛰어넘어 만민에게 존경을 받습니다. 폐쇄적, 배타적 국가관으로서가 아니라 개방적이며 포용적인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조국애만이 기억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보다 큰 꿈과 이상을 갖도록 우리 모두를 일깨우는 것입니다.(<이 땅에 빛을>)
소금이 짠맛을 잃는다면 그 존재 가치가 없듯이 신앙인이 그 약속에 충실치 못한다면 결국 멸망할 것이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빛의 의미도 그 자체로 명백합니다. 촛불, 등잔불, 전등, 그 어떠한 것도 본래의 의미는 밝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그가 자리잡은 그 현장에서 빛을 던져 주어야 합니다. 기쁨의 빛 구원의 빛, 웃음의 빛, 화해의 빛, 해방의 빛, 자유의 빛, 또 앞과 미래를 밝혀 주는 길잡이 빛이 되어야 합니다. 빛이 제 구실을 못하는 경우의 안타까움, 답답함, 그것을 알아듣는 우리는 그 누구를 원망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태우는 희생 제물이 되고 희망을 안겨 주는 새벽별이 되어야 합니다.(<소금과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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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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