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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구 홍보국장, 주보혁신 백지칼럼도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 39] 일반 신문에 나지 않는 내용이 실리면서 주보에 관심이 많아지고...

등록 2022.05.15 16:37수정 2022.05.1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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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민주항쟁 20주년을 맞이해 9일 오후 성공회대성당 마당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함세웅 신부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6월민주항쟁 20주년을 맞이해 9일 오후 성공회대성당 마당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함세웅 신부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사람이 사는 세상 어디라도 갈등ㆍ시셈이 있기 마련이다. 천주교라고 다르지 않았다. 보수성이 짙은 주교 등 간부들 중에는 함세웅의 개혁성향과 사회참여를 영 내켜하지 않았다. 구의동성당에 주임신부로 발령된 지 1년여가 되는 1988년 8월, 그가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하와이수도원에 머물고 있는데, 서울교구 홍보국장으로 인사명령이 났다. 

독립된 성당의 주임신부로서 거침없이 활동하는 그를 본부에 예속시키려는 삿된 의도, 아니면 그의 역량을 평가하여 중앙에서 주요 임무를 맡기려는 선의, 함세웅은 의도와 배경에 주저하면서도 업무가 주보를 만드는 홍보국이어서 의욕이 생겼다. 당시 서울교구에서는 주보를 25만 부 가량 발행하고 있었다. 

5공 정권의 언론탄압과 '알아서 기는' 언론인들의 나약성으로 제도언론이 '땡전뉴스'로 상징될 만큼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매주 25만 부의 주보를 정론지로 만들면 큰 역할을 하고, 언로의 숨통이 트일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의 자유언론에 대한 애착은 남다른 면이 있었다. 

당시 서울교구장은 김수환 추기경이고 총대리는 김옥균 주교였다. 김 주교는 함세웅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홍보국은 달리 하는 일이 없고, 주보를 발행하는 일이 업무의 전부였다. 4면짜리 주보를 8면으로 증면하고 기획과 편집을 일신했다.

함세웅은 1면과 2면에 무기명으로 글을 쓰고, 정달영(언론인), 구중서(문학평론가), 한용희(교수) 등으로 편집위원회를 구성하여 알찬 기획과, 교회소식이나 각 성당의 소식도 담았다. 일반 신문에 나지 않는 내용이 실리면서 주보에 관심이 많아지고, 군종 신부들이 주일에 군인들에게 주보를 나눠주었다가 보안사에 끌려가 구타를 당하는 일도 일어났다. 

주보가 명성을 얻고 성가가 높아지자 김옥균 주교와 이석충 신부 등이 선두에 나서 주보를 비판했다. 그럴수록 함세웅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에 문제가 있느냐, 시대의 징표를 말하는 데 뭐가 문제냐고 당당하게 맞섰다.

왜 자꾸 정치를 거론하느냐고 해서 "성경은 하느님의 정치다. 구약에서 정치를 빼봐라. 성경에 뭐가 남느냐. 정치가 현실이고 정치를 구원해야 한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현실정치를 늘 비판하고 그러지 않느냐." 이렇게 논지를 전개하지요. (주석 5)


한번은 칼럼 난에 제목만 쓰고 내용은 빈칸으로 하는 주보를 발행했다. 장준하는 1950년대 자유당의 탄압에 월간 <사상계>의 권두언을 백지로 하여 저항했고, 1975년 <동아일보>가 광고탄압 때 광고난을 백지로 했던 사력을 떠올린 것이다.

파문이 일어났다. 신자들은 '백지'의 의미에 대해 궁금해하고, 국무총리실ㆍ안기부ㆍ문화체육부에서 소속의 천주교신자들을 보내어 사정도 하고 협박도 하였다. 그럴수록 김옥균 주교 등의 압박이 심해졌다. 독수리를 좁은 새장에 가두려 했는데, 오히려 철창을 부수고 넓은 광장에 날개짓 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그럴수록 주보는 알찬 내용으로 찾는 독자가 더욱 많아졌다. 


그때 제가 주보에 전력을 쏟았어요. 그러면서 매일 명동수녀원의 미사를 봉헌했어요.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이라고, 수녀원 미사가 오전 6시인데 그 미사를 신부님들이 힘들어하세요. 아침 6시에 매일 빠지지 않고 봉헌해야 하는데, 그래서 제가 자원했어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 빠지지 않으려 했어요. 당시 명동수녀원에 좋은 수녀님이 계셨어요. 지학순 주교님이 추천해서 수녀원 가신 분이에요. 뜻도 잘 맞았고요. 150명 수녀님들하고 미사를 하니까, 저는 거기서 은혜도 입고 수녀님들께 강론도 해드렸어요.

그러고는 아침에 새벽미사가 끝나고 나면 제의방에 가서 강론을 썼어요. 제의방은 기도하는 자리니까 거기서 2시간 동안 자리 잡고 다음 주일의 주보를 쓰는 거예요. 1독서, 2독서, 복음…3년 동안 매일 썼어요. 그것을 묶어서 낸 게 <약자의 벗 약자의 하느님> <말씀이 몽치가 되어> <불을 지르러 오신 예수> 입니다.


주석
5> <함세웅 신부의 시대증언>, 346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함세웅 #함세웅신부 #정의의구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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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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