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최수진
며칠 전, 장애인시설에서 자원순환을 위한 투명 페트병 분리 배출법 교육을 했다. 다들 할수록 어렵다고 하는 분리배출을 시각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진 분들께 어떻게 알려드려야 할까 고민됐지만, 누가 들어도 이해가 될(이것도 내 기준이지만)만한 말들로 풀어보자 하고 진행했다.
참여자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인사를 나누고 우리가 왜 투명한 페트병을 따로 모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내놔야 하는지 시연하고 직접 해보게 했다. 참여자들의 대부분은 지적장애와 함께 시각장애까지 가졌기에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라벨을 떼고 병을 찌그러뜨리고 뚜껑을 닫는 과정을 정말 열심히 해냈다. 마지막에 소감을 나눠 준 A의 말이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
"페트병을 찌그러뜨리는 일이 어려웠는데, 그래도 찌그러뜨릴 때 나는 소리가 좋았다. 통쾌했다."
탄소중립 달성이 국가의 중요한 과제가 됐고, 그중에서도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이야기는 다양한 단위에서 다각도로 다루어지고 있는 만큼 시민사회에서의 관심이 크다. 그래서 전환 과정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으면서 지금의 불평등의 간극이 더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좋은 정책구축제안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정부나 서울시의 탄소중립 이행 과정을 보면 과연 기본법에도 적혀 있는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의지가 담겨 있나 의심을 하게 하는 부분이 많다. 탄소중립위원회의 구성에서도 사회적 약자의 참여 창구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고,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탄소중립기본조례의 내용에도 시민의 권리에 대한 내용은 미비한 수준이다. 그런데 관에서의 흐름과는 별개로 과연 시민사회에서도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참여 유도를 적극적으로 끌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구적인 문제 앞에서 정부, 광역시, 자치구, 민간단체들이 내놓는 다양한 기후환경의 교육 콘텐츠는 '보통의 기준'에 근거한 것이 대부분이다. 일반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정상' 프레임 가득한 내용은 어려운 용어와 복잡한 과정, 시민의 의무로서의 임팩트 있는 활동 그리고 착실한 개인의 실천 등 하나같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결국, 어떻게 설명을 하든지 본인이 알아서 잘 알아듣고 뭔가를 해야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이 갖춰지는 구조다. 고령사회라고 하면서 시민의 권리를 구현할 수 있는 정책은 활동성 있는 노인만을 기준으로 만들어지고 있고, 모든 정책은 모든 시민 참여를 기본으로 한다면서도 장애인은 수혜자로서의 자리에만 머물게 하고 있다. 결국 이런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낀 소수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배제된 이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이야기 자리를 만들어 모든 지구인들이 알아야 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기후휘기 대응의 공간에 초대하고 있다.
시민사회에서 제안하는 기후위기 대응 정책 중 '1인당 교육 비용을 1만 원으로 책정'이 있다. 내가 내는 세금이 허투루 쓰이는 게 싫다는 인식은 유독 그 혜택이 사회적 약자로 향할 때 강하게 발현된다.
국가의 공적 운영 비용으로 쓰이는 세금이 누구에게는 적용해도 되고 누구에게는 적용하면 안 된다는 것은 사회적 약자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천부인권이 법의 근간임을 생각할 때 참 아이러니하다. 정책에서 말하는 시민과 국민이 모든 '나'임이 법으로 보장이 된다면 좀 더 쉽고 간단하고 명쾌한 말들과 일들이 일상인 사회가 되지 않을까? 쉽고 간단하고 명쾌한 것들이 우리가 함께 하는 공간을 꽉 채운다면 자연스럽게 차별과 배제는 설 자리를 잃고 공중으로 흩어지지 않을까?
A에게 투명페트병 찌그러지는 소리가 명쾌하게 들린 것은 너무나 새로운 공기의 울림이어서일 것이다. 보지 못하고 어려운 말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남들이 '지겨운 환경 교육'을 받는 동안 한 번도 직접 플라스틱을 분리배출을 해보는 경험을 하지 못했으니, 처음 스스로 만들어낸 찌그러지는 소리가 더 크게 와닿았을 것이다.
쉬운 말과 간단한 과정은 누구에게나 유익하다. 다 아는 척하지만 사실상 범람하고 있는 어려운 기후환경 용어와 자원순환을 위한 분리배출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알아야 할 내용은 많은데 너무나 어렵고 새로운 분야이기 때문에 거리두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차피 함께 대응해야 하는 기후위기라면 모두가 접근하기 쉬운 매뉴얼로 만들면 좋겠다. 그리고 모두가 공동의 문제를 안고 있는 구성원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는 함께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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