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극이 사라진 날
사계절
빛바랜 듯한 풍경들이 가슴 저미게 다가오는 건,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날 저녁, '침략군을 위해 공연을 하지 않습니다'라며 샤오 아저씨가 떠나고, 일본군의 공습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캄캄하고 눅눅한 방공호 속 숨을 조여오던 소녀, 마지막 장 어둠 속 소녀의 춤사위는 '죽은 이들을 향한 추모'의 씻김굿처럼 보여진다.
명나라의 수도였던 난징은 개항장이다. 아편전쟁 후 이곳에서 '난징조약'이 체결되었고, 신해혁명 후 중화민국의 수도가 되었다. 침략자 일본에게 '난징'은 주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1937년 이곳을 점령한 일본군은 다음 해 2월까지 6주 동안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에 비견되는 대량 학살, 강간, 방화를 일으켰다. 이 기간 동안 20~30만 명 정도의 중국인이 학살되었고, 도시의 2/3가 넘게 파괴되었다.
평범하고 설레던 나날들은 뒤이은 잔인한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처연한 기억이 되어 돌아온다. 그 뒤로 더는 소식을 들을 수 없다던 샤오 아저씨, 그리고 공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생존'했을까.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는 익숙하지만 난징 대학살은 낯설다. 그 낯선 우리 곁의 역사를 함께 돌아보자는 의미도 있었지만, 그와 함께 한·중·일의 미묘한 관계를 짚어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고른 책이었다. 일본은 조선을 합방하고, 그 식민지적 야욕을 중국을 향해 뻗어갔다. 만주를 손에 넣고, 중국 본토를 향해 뻗어나간 그 '야욕'의 정점에 난징 대학살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는 나이가 지긋해진 우리의 어린 기억 속 '중국', '중국인'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어린 시절 어른들은 중국을 낮잡아 표현하는 말을 사용하곤 했었다. 아마도 떼로 몰려온 중공군에 대한 어른들의 기억이 그런 용어를 만들어 냈으리라. 하지만 그런 역사적 기억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