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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을 향한 지향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죽음의 집의 기록'

등록 2022.05.27 10:34수정 2022.05.2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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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청년이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반체제 운동을 했다는 죄명으로 체포되어 시베리아 옴스크 감옥에서 4년 간의 혹독한 유형 생활을 하게 된다. 이후 출소한 도스토예프스키는 5년 3개월의 군복무까지 마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유형 생활의 체험을 담은 자전적 소설 <죽음의 집의 기록>을 쓴다.
 
 죽음의 집의 기록,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지은이)
죽음의 집의 기록,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지은이)열린책들
 
소설 속 화자로 등장하는 고랸치코프는 귀족 출신으로 자신의 아내를 죽인 죄로 10년 간의 감옥 생활을 하고 출소한 사람이다. 소설은 고랸치코프가 감옥 생활을 하는 동안 죄수들을 자세히 관찰한 내용으로 채워지는데, 물론 여기서 고랸치코프는 도스토예프스키 그 자신이라 할 수 있다.

고랸치코프는 자유가 박탈된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죄수들이 무엇을 원하고 갈망하면서 살아가는지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면서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밝혀낸다.


죽음의 집, 즉 시베리아 옴스크 감옥에서 고랸치코프는 정치범과 살인범, 밀수꾼, 강도를 비롯한 동네 잡범으로 이루어진 범죄자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형편없는 식사와 벌레가 득실거리는 좁은 감방, 발목에는 족쇄를 찬 채였다. 죄수들은 날마다 아귀다툼하듯 싸우면서 서로에게 증오하는 말을 내뱉는다. 그야말로 감옥은 지옥 그 자체였다.

죄의식이 없는 죄수들

고랸치코프가 죄수들과 함께 지내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부분은 그들이 도덕적으로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죄수들은 스스로 처벌되어야만 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범죄에 대해서는 "조그마한 참회의 징후"나 반성하는 태도가 없었다.

오히려 죄수들은 "사회를 증오하고, 거의 언제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했으며, 잘못한 것은 사회라고 여겼다. 더욱이 그들은 이미 사회로부터 형벌을 받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자신은 거의 정화되었고 빚을 갚았다고 생각했다".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죄수들을 보면서 고랸치코프는 "감옥이나 강제 노동과 같은 제도가 범죄자를 교화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한 "제도들은 단지 범죄자를 벌하고, 평온한 사회를 위해 향후에 있을 죄인의 음모로부터 안전하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범죄를 지은 인간의 정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구속이나 억압, 법이나 형벌이 아니라, 죄수 스스로의 참회와 반성, 깨달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고랸치코프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죄수들이 그 환경에 적응하면서 익숙해지는 모습을 발견한다.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고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죄수들도 감옥에서의 노역과 간수의 구타에 점차로 익숙해져서 고분고분한 인간이 되어간다. 죄수들은 "거의 언제나 간수들에게는 순종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런 죄수들을 보면서 고랸치코프는 인간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고통에도 얼마든지 익숙해질 수 있는 존재이며, 잠깐의 즐거움을 주는 쾌락에도 익숙해지며, 체벌을 받을 것이라는 공포와 불안에도 익숙해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고랸치코프는 인간은 "모든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고랸치코프는 죄수들이 갈망하는 '자유'라는 의미를 숙고한다. 죄수들의 자유를 가로막는 것은, 감옥과 같은 환경이나 강제 노동과 구타와 같은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그것들에 길들여지고 익숙해지는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정작 죄수들을 가두고 있는 것은 감옥이 아니라 그들이 점차로 익숙해지는 감옥에서의 삶인 것이다.

고랸치코프가 알게 된 또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은 자유를 박탈당한 죄수들이 나름대로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죄수들은 "족쇄를 차고 있으면서도 자유롭게 감옥 안을 오가고 있었으며,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노래를 부르고, 자기 일도 하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면서, 심지어는 술을 마시기도 했으며, 밤마다 카드를 하는 죄수들도 있었다".

죄수들은 발각되면 큰 처벌에 처해질 것을 알면서도 술과 담배를 감옥으로 들여오고, 감방에서 놀음을 이어나간다. 그런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돈'이었다. 돈이 있으면 감옥에서도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자유가 박탈당한 곳에서의 자유는 돈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죄수들에게 "돈은 주조된 자유"와 같았다.

돈을 쓰면서 죄수들은 자기의 자유대로 행동할 수 있었다. "어떠한 낙인이나 족쇄가 있다고 해도, 죄수들은 돈을 쓰면서 금지된 향락을 얻을 수 있었고 여자를 얻을수도 있었으며, 간수를 매수할 수도 있었다." 죄수들은 돈을 통해서 자신이 많은 자유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기 스스로 확인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감옥에 구속되어 있는 죄수들에게 돈으로 얻는 자유는 한계가 있었으며,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되지는 못했다.

정신적인 변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죄수들이 최고의 기쁨과 자유를 느낄때는 연극을 만들어서 무대에 올리는 순간이었다. 성탄절 축제 기간 동안 죄수들은 스스로 배우가 되어 무대에 올릴 연극을 연습한다. 죄수들은 무대에서 족쇄를 벗고 연미복을 입고 중절모를 쓰고 망토를 입고 연기를 한다. 연극이 끝나자 관객들은 배우들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낸다.

이 한 달의 기간 동안 감옥에서는 그 어떤 말다툼이나 싸움, 악의에 찬 조롱도 일어나지 않았다. 죄수들은 노역을 나가는 고된 일정 속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작은 성공에 죄수들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하고 우쭐거리기까지 했다".

죄수들에게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답게 산다는 기분'을 느끼는 순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죄수들은 연극을 함으로써 "자기가 모든 세계와 접하고 있으며, 그래서 자기들은 결코 버림받은 사람도, 빵 부스러기 같은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나마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죄수들은 "잠시나마 정신적으로 변화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말한다.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돈도 아니요, 순간의 쾌락도 아니요, 그런 자유는 길들여진 삶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삶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자유는 "불행한 상황 속에서도 잠시나마 자기식대로 살아보는 경험"에서 온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바를 중단없이 추구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강조하건대, 인간의 자유는 "목적을 향한 지향"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어떤 목적 없이는, 그리고 그 목적을 향한 지향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우리 모두에게 목적은 자유, 그리고 감옥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작가의 블로그에도 올라갑니다.

죽음의 집의 기록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은이), 이덕형 (옮긴이),
열린책들, 2010


#도스토예프스키 #죽음의 집 #자유 #고통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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