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부안 핵폐기장 문제 해결을 위해 주민투표 실시를 촉구하는 각계인사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인 김지하씨(왼쪽)와 고은씨.
남소연
그의 생애는 1971년 담시 <오적> 필화사건으로 투옥ㆍ수배 등의 고난의 시기와, 1991년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칼럼의 '필화' 이후 신비성이 강한 글쓰기 활동기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필화는 그를 고난의 길로 몰아부쳐 7년 여의 옥살이를 하고, 두 번째 '필화'는 민족문학작가회의로부터 제명당하는 등 민주진영의 내침을 받고 정신적인 고통을 겪게 되는 변곡점이었다. 이처럼 상반되는 '필화'의 주인공도 흔치않다.
그는 고난과 시련ㆍ은둔 속에서도 많은 작품을 생산하고, 각종 상을 받았다. 로터스 특별상(1975), 국제시인회의 위대한 시인상(1981), 크라이스키 인권상(1981), 이산문학상(1993), 정지용문학상(2002), 만해문학상(2002), 대산문학상(2002), 시와시학상 작품상(2005), 만해대상(2006), 민세상(2011) 등이다.
그의 생전에 10권짜리 <김지하 전집>이 간행되고, <흰 그늘의 길>이란 회고록 3권을 집필하였다. 십 수권의 시집ㆍ산문집을 내고, 일본 가톨릭정의와 평화협의회가 <김지하는 누구인가>에 이어 일본인 평론가 푸미오 타부치의 <신과 혁명의 통일>이라는 김지하 연구서를 내고 국내에서 번역되었다. 국내 학자ㆍ시인ㆍ평론가들의 연구논문은 일일이 소개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가 전경의 곤봉에 맞아 죽은 뒤 그에 항의해 학생ㆍ청년들의 분신과 투신자살이 이어지자 김지하 시인은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장문의 칼럼을 실어 투쟁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 일로 그는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민주화운동 진영과 척을 지게 되었고, 그의 구명 운동이 계기가 되어 결성되었던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ㆍ작가회의)에서도 제명되는 곡절을 겪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