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령 같은 행정 입법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을 통해 상위 법률의 입법 취지나 개혁 조치의 근본 정신을 무색케 만들고 있다. '시행령 통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국민적 우려와 일선 경찰들의 반발을 초래하면서까지 경찰청을 행정안전부 통제 하에 두려 하고,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담당하던 인사검증 권한을 한동훈 법무부장관 직속 인사정보관리단에 맡기고, 고소·고발 없이 가능한 검찰의 직접수사(인지수사) 기능을 특정 부서로 제한한 검찰개혁 취지를 무력화시키고자 검찰 조직 개편을 추진하는 것 등은 시행령·시행규칙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윤석열 스타일의 국정 운영을 보여준다.
보도에 따르면, 대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어줄 목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행정 부처들을 상대로 시행규칙 개정을 독려하고 있다고 한다. 국무회의를 제2의 국회로 만들고 행정 입법으로 국회 입법에 맞서고자 하는 의도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윤 정부가 '시행령 통치'에 과도하게 경도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여소야대에 기인한다. 용산에서는 여당이지만 여의도에서는 야당인 현실을 그런 방법으로 타개하려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교묘하게 금기를 무시하는 윤 정부
여소야대에 처했던 노태우의 민주정의당(민정당) 정권은 구여권인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뿐 아니라 야당 주류인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까지 끌어들여 3당 합당을 감행했다. 김대중의 평화민주당보다 세력이 컸던 야권 주류 진영까지 끌어들이는 대규모 정계개편을 통해 여대야소 상황을 만들었다.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김대중-김종필 공동정부는 '의원 빼가기' 카드를 구사했다. 3당 합당만큼은 아니지만, 이 역시 호평 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공동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의원 영입 작전에 화가 난 서청원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정균환 국민회의 사무총장과의 특별대담에서 "여권이 더 이상 의원들을 빼가지 않겠지요"라는 말을 첫인사로 던졌다. 그런 뒤 "의원 빼가기는 정계개편이라는 용어로 대체될 수 없는 후안무치한 공작 정치"라고 비판했다(1998년 5월 4일자 <동아일보> 6면).
윤 정부 입장에서도 정계개편이나 의원 영입 등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정권개편이나 의원 영입 같은 것은 정당 간의 벽이 낮을 때 가능하다. 최근까지 국민의힘이 보여준 과도한 편가르기 정치로 인해 정당 간의 벽은 더 높아졌고, 야당 의원들은 정치 생명을 걸지 않고는 국민의힘으로 쉽게 건너갈 수 없게 됐다.
이는 윤 정부가 정계개편보다는 '시행령 통치' 쪽으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일 수 있다. 행정 입법을 국회 입법처럼 활용해 국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의도가 작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
윤 정권이 하고자 하는 일들의 상당 부분은 민주당 정권이 해놓은 일을 뒤집는 것이다. 이 역시 국회를 통한 민주당과의 협조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래저래 국회 입법보다 행정 입법으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법령이 매우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아무래도 국회 입법보다는 행정 입법이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 전문성이 다소 낮은 국회의원들이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데다가 방만하기까지 한 오늘날의 입법을 일일이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국회 입법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데 그치고, 구체적인 입법은 전문적인 행정 관료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그럴지라도 시행령·시행규칙은 상위 법령인 국회 법률이 정해진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명문의 법률 조문을 벗어나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고 모법의 입법 취지 역시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윤 정권이 추진하는 '시행령 통치'는 교묘한 방법으로 그런 금기들을 무시하고 있다. 일례로, 행안부 경찰국 설치 방안도 그렇다.
행안부에 경찰국을 설치하는 것 자체를 금하는 상위 법령은 없으므로, 이를 두고 명확히 위헌·위법이라 판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1991년 이전처럼 행안부 경찰국을 두게 되면, 경찰을 정권에 예속시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나 부천서 성고문 사건 같은 일들을 재현시킬 가능성도 없지 않게 된다. 1991년 경찰청을 독립시킨 국민들의 개혁 취지에 반하는 쪽으로 행안부 경찰국 설치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반대편을 설득할 자신이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