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
보리
고향에 가지 못한 사람들
이 책은 권정생 선생님이 1980년대 쓰신 글이지만 '독재 정권' 하에서 빛을 보지 못하다 선생님이 작고하신 후 2007년 보리 출판사의 평화 발자국 시리즈 첫 권으로 뒤늦게 출간되었다. 왜 이 책이 전두환 정권에서 출간될 수 없었을까?
박수근의 그림을 보듯 향토색 짙은 정서가 물씬 풍겨나는 이담 작가의 그림으로 재탄생된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 그 시작은 달빛이 물드는 치악산의 밤이다. 그 이슥한 밤 치악산에 두 명의 그림자가 등장한다. 한 명은 어린 소년 곰이, 또 다른 사람은 인민군복을 입은 오푼돌이 아저씨이다. 두 사람은 이 늦은 밤에 왜 산 속에 있는 걸까?
두 사람의 고향은 모두 '북쪽'이다. 전쟁이 터지고 함경도에서 살던 곰이는 가족과 함께 피란을 가다 전투기의 폭격을 맞았다. 폭격을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 하지만 곰이는 머리가 띵해지며 쓰러지고 만다. 그렇다. 그림책 속 곰이는 피란을 가다 치악산에 전투기 폭격으로 목숨을 잃은 원혼이다.
오푼돌이 아저씨 역시 마찬가지다. 대동강가가 고향이던 아저씨는 국군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곰이의 머리에서도, 오푼돌이 아저씨 가슴에서도 피가 흐른다. 지난 날의 회한에 나무둥치를 붙들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그 날의 기억에 몸서리를 치던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
진달래가 붉게 피어오르는 치악산의 새벽이 밝아오자 밤새 고향을, 가족을 그리던 두 사람은 자신들이 쓰러져 간 그 자리에 다시 몸을 눕힌다. 인민복을 입은 주인공이 등장한 그림책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시대'의 변화가 필요했다.
'인민을 위해 싸운 건데 죽은 건 모두가 가엾은 인민들 뿐이었어'
몇 십년의 세월이 흘러도 그날의 상흔을 지닌 채 밤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두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들이 '귀신'이라 무서운 게 아니라, 마치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뜯기는 운명의 프로메테우스처럼 전쟁의 비극을 매일 되풀이하는 그 두 사람의 아픔이 절절하게 전해져서이다. 전쟁의 비극을 이처럼 '여운'있게 전할 수 있을까, 역시 권정생 선생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