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덕 해변가에서의 즉흥춤제주국제즉흥춤축제(22.5) 공연 참여 후 해변가에서 즉흥춤을 추고 있다
곽승희
배가 드러난 캔을 들고 해변가로 향했다. 물에 젖은 현무암을 밟고 지나가는데 돌 사이 폭죽 껍데기가 걸려 있었다. 들어보니 종이로 된 부분이 바닥으로 축 쳐졌다. 양손으로 잡아당기면 바로 찢어질 것처럼 물렁했다.
이 해변가 바로 앞에 자리 잡은 숙소에 묶은 어젯밤, 폭죽 소리를 들었다. 제주 밤바다를 비추는 빛과 웃음소리라니. 아름답다 여겼다. 그 시공 속 사람들은 지금 어디 있을까. 로맨틱이 사라진 자리에는 폭죽 껍데기만 남았다.
왼 손가락 끝으론 캔을, 오른 손가락 끝으로 폭죽 포장지를 들고 돌 사이를 빠져나갔다. 돌과 물과의 일체감 속에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울 때, 이 쓰레기들을 만났다. 예전이라면 혀 한 번 끌끌 차고 지나쳤을 테다. 이들에게 마음이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다르다. 내가 만나는 모든 것들이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없으면 큰일 나는 휴대전화, 거실 창 너머 에어컨 실외기 위 뿌려놓은 빵 조각을 쪼아대는 동네 새들, 집 앞 나뭇가지 잎이 하늘에 만드는 잎 그물들, 내가 사랑하는 동반자 '한몬'과 반려묘 '웅미', 포인트 적립을 위해 내 이름을 불러 확인하는 동네 마트의 매니저님까지 모든 게 귀하게 보인다.
이상한 일이다. 몸 둘 바 모를 만큼 이 순간에 만나는 모든 존재에 감사할 때도 있다. 이런 감각은 낯설다.
사람이 크게 아프고 나면 삶을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진다고, 한 친구가 말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인가 보다. 갑작스럽게 암 진단을 받았던 이전의 방식으로 내 몸과 삶을 대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몸에 삶을 맡겼다. 우선순위는 내부의 느낌과 감각 그리고 움직임이다. 내부 감각의 이끌림 대로 몸 부분부분을 움직이다 보면 가벼워진다. 스스로 목에 매달았던 인정 욕구, 머리로만 겨냥했던 이상적인 목표들이 땀 흐르듯이 배출된다.
춤에 삶을 맡겼다. 움직임이 춤이 되는 예술을 배우며 얻은, 나와 춤벗들이 움직임으로 어우러지며 느낀 깨달음(1~5편에 느꼈던 것들)을 일상으로 가져왔다. 그러자 이전과 다른 가치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상식이 흔들렸다. 인간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돈을 벌며 삶을 꾸려가야 한다고 배웠다. 경쟁에서 우위에 설수록 칭찬받았다. 하지만 항암 치료를 받던 때의 나는 독립적인 삶과 거리가 멀었다. 주변의 돌봄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했다. 지금도 무수히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과거라고 아니었을까. 나와 연결된 무수히 많은 이들이 한 손, 한 손 이어져 나의 성취가 가능했다. 나 혼자 잘나서 내 능력으로만 가능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3년 내 재발률이 높은 암이기 때문에 3개월마다 검진을 받아야 한다. 한의학에서는 5년은 지나야 몸이 회복된다고 말한다. 가능성의 일이긴 하나, 암의 재발은 평생 나와 함께 할 것이다. 생의 문제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이전처럼 주 5~6일 회사를 사랑하며 일하는 방식은 이제 나에게 적합하지 않다. 노동의 대가 역시 이전처럼 안정적으로 월 삼백 가까운 돈을 받지 못할 것이다. 충분한 화폐 자본을 벌지 못하는, 독립적인 삶이 불가능한 나는, 현대 사회의 인간인가? 나는 이 시대에 적합한가? 나는 인간이 맞는가?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성인 여자'라는 단어에 연상되는 특정한 이미지가 내 안에 있었다. 하지만 항암 치료를 받던 때의 나는 성인 여자라고 보기 어려웠다. 머리카락을 비롯해 온 몸의 털이 빠졌다. 난소 기능은 정지됐다. 즐겨 입던 페미닌 스타일 원피스를 도저히 입을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여자로 볼 수 있나? 그때는 아니고 털이 자란 지금은 여자인가? 난소 기능 회복으로 여성 호르몬이 나와야 여자인가? 나는 여자가 맞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