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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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많은 자료들이 MZ세대를 이해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시장에서 주요 소비주체로 떠오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2022년 기준, 전 세계 인구 중 MZ세대가 차지하는 인구 비중은 36%). 실로 많은 경제 기사들이 MZ라는 단어를 남용하며 이 세대의 영향력에 주목한다.
물론, 퇴직연령이라는 사회의 기준과 달리 생산성이 높고, 실질 구매력이 높은 5060 액티브 시니어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의하면 나이 듦은 존중받지 못한다.
"신제품이 출시되면 그 신제품을 중심으로 세계가 새롭게 배치돼요. 새로운 제품은 젊은 세대를 위한 거예요. 자본주의는 가장 젊은 것이 가장 가치 있다고 하는 체제예요." <강신주의 다 상담>에서 말하듯 자본주의에서 세계는 MZ세대 위주로 재편된다.
그래서 MZ세대가 아닌 세대를 의식적으로 주목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방향으로 윗세대가 MZ세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조직 차원에서 중장년 층에 대해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고연차/고령자로 조직에서 사회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느낌과 의미일지, 어떤 환경과 내면적 부담을 느끼는지, 우리는 얼마나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을까.
나이 듦의 사회적 가치, 존경에서 부담으로
"팀장인 내가 빠져야 팀원들이 재밌게 놀지. 난 눈치껏 빠질게요."
연공 서열이 일반적인 한국 조직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팀원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직급이 올라가며 월급이 오르는 데에는 외로움의 값도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개방적인 상사라도 팀원들은 평가자인 상급자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외부적 환경의 변화도 나이 듦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켰다. 변화가 거의 없거나 더뎠던 시절에는 고연차 사원들이 조직에서 존경을 받는 분위기가 일반적이었다. 지식과 정보와 경험의 가치가 컸으며 조직은 그들의 경험과 전문성에 크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기술이 도입되고 비즈니스 환경이 빠르게 변하며 새로운 유형의 시장과 고객이 등장했다. 기성세대의 지식과 경험보다는 새로운 배움이 필요하게 되었다. 특히나 코로나로 새로운 협업/소통 툴이 도입되면서 고연차 선배들이 저연차 후배들에게 활용법을 배우고, 새로운 유형의 소비자를 이해하기 위해 신입들에게 트렌드를 물어본다. 가르침의 주체에서 배움의 주체로 역전되며 이전에는 자연스럽게 주어졌던 선배로서의 권위와 위엄이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급변하는 환경, 새로운 지식과 스킬을 요구하는 일터에서 출근하는 게 눈치가 보인다는 심경을 토로하는 팀장님도 계신다. "나는 희망퇴직을 원하는데 아내가 애들 학자금 지원받아야 되니 막내 대학 졸업까지만 버텨달래서..."
특히 한 직무로 전문성을 쌓아오다가 숙련자가 아닌 관리자의 길을 가게 되면서 오히려 스스로의 생산성 및 사회적 가치가 낮아졌다고 느끼는 경우가 그렇다. 이런 심리 기제로 연봉이 무거운 고연차 사원들은 필드에서 언제 떠나야 할지 조직의 눈치를 보게 된다.
법정 정년은 60세, 평균 퇴직 연령은 51.7세
직장인 534명을 대상으로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함께 진행한 "체감하는 정년퇴직 시기" 설문에서 평균 정년퇴직 연령이 51.7세로 조사됐다. 기업 형태에 따라서는 대기업 직장인들이 체감하는 정년퇴직 연령이 평균 49.5세로 가장 낮았고,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직장인은 평균 51.7세, 공기업 및 공공기관 재직자는 평균 53.8세라는 결과가 나왔다. 법정 정년 60세와 현실 사이에는 꽤 큰 괴리가 있다.
인간의 수명은 늘어났고 그에 따라 일하는 기간도 늘어났다. 은퇴가 늦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2030 축의 전환>에서는 은퇴를 19C말에 등장한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설명한다. 프로이센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최초로 국가가 보장하는 노령 연금제도를 실시하며 만든 은퇴라는 개념으로 인해 우리는 삶을 크게 '어린 시절-일-은퇴'라는 세 단계로 생각하게 되었으니 위대한 발명품이란 표현이 과언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은퇴와 퇴직은 다른 개념이다. 사전적 의미로 퇴직은 '현직에서 물러남'이고, 은퇴는 '물러나서 한가로이 지냄'이다. 퇴직 이후 재취업, 전직을 하는 경우가 더 많으니 퇴직과 은퇴는 실질적으로도 다르다. 이제는 일과 은퇴 사이에 제2의 도전(전직 등)이라는 단계를 추가해야 할 것이다.
"곧 은퇴를 앞둔 이들은 과거와 달리 자신에게 새롭게 주어질 긴 시간을 휴식이 아닌 인생 2막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생각을 보편적으로 갖고 있다. 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자유라는 새로운 꿈을 꾸는 것이다." - <명견만리> 중에서
과연 정년퇴직은 일로부터의 자유일까, 일 할 권리의 박탈일까. 나의 상사는 어떤 심정으로 퇴직을 기다리고 있을까.
회사에 들어오면 바보가 되는 이유? 그게 '이득'이라서
어렸을 때 했던 생각들을 돌이켜보면 열정과 패기가 넘쳤고, 한편으론 아는 만큼만 보였구나 싶다. 지금도 많은 경험을 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과 부대끼고 일하며 삶의 다양성을 알아간다. 그런 변화 중 하나가 이해하지 못했던 인물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장님을 이해 못 하겠어요. 왜 회사에 나와서 일을 안 하시는 걸까요." 후배님들이 이런 하소연을 할 때면, 이전의 내가 떠오른다. 본인의 열정만큼 열심히 하지 않는 상사, 굳이 변화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상사에 많은 신입들이 답답함을 느낀다. 충분히 여력과 능력이 있고, 본인보다 한참 높은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안 하거나 떠넘긴다고 느낄 때면 분노를 표하기도 한다.
사회초년생 시절 누구나 한 번쯤 품었을 질문, '회사에 들어오면 다 바보가 되는 걸까요?' 이에 대해 <일의 격>이란 책은 답한다. "그분들이 혁신 의지가 없는 건 당신보다 멍청해서가 아니다. 현 시스템에서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게 그들에게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일탈이 아님을 이제는 이해한다. 시스템(유인구조)의 개선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도 수긍한다. 신입 때는 모든 사람이 나처럼 열정을 갖고 있으며, 동기 부여되고 싶어 하며, 누구나 일의 의미를 고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지 않은 상사를 대면했을 때 바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개의 다른 동기부여 요인이 있고, 각기 다른 회사를 다니는 이유가 있으며,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의 전략이 있다.
물론 모든 상사가 혁신의지가 없고 열정이 없고 일을 덜 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높아진 직급과 연봉에 따라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더해가는 사람도 많다. 부하직원 입장에서 워커홀릭 상사가 좋은 것만도 아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많은 저연차 사원들이 직장에서 배우고 싶고 존경할 만한 상사를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조직문화와 인사제도가 중요하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다른 마음들의 접점을 찾아 용접하는 것이 문화와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결국 다 다르다는 것,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면 사람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인생 선배들이 문제 해결을 제도와 문화에서 찾는 이유다.
어차피 완벽한 역지사지는 불가능하다. 본인이 그 입장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나마' 알게 되니까. 다양한 다름이 존재하는 조직에서 나 또한 하나의 다른 존재임을 인정할 때, 나 역시 수많은 답 중 하나임을 받아들일 때, 세대나 연차의 구애없이 구성원 모두가 화합하고 협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한숨을 푹 쉬시는 우리의 팀장님을, 나만큼 퇴근하고 싶어 하시는 우리의 부장님을 마음으로 이해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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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어린이의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했다. 그렇게 피터팬 내지는 돈키호테를 닮은 낭만주의자가 되었다.그러나 네버랜드는 없다. 출근하는 피터팬으로 살며 책임감 있는 어른과 낭만주의자의 균형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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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부장님,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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