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총격을 당한 일본 나라현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 앞 교차로 근처에 마련된 헌화대에서 10일 오후 시민들이 합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위해 국장을 거행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12일의 가족장에 이어 올가을에 한 번 더 국장을 치르기로 한 것이다. 정부·자민당 합동 추모식도 있고 국민장이 있는데도, 상당수 국민들의 반발과 야당의 유보적 태도를 무릅쓰고 국장을 선택했다. 아베 신조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보내기로 한 것이다.
1967년에 세상을 떠난 요시다 시게루(재임 1946~1947년 및 1948~1954년)를 제외한 역대 총리들의 경우에는 합동장을 치르는 게 일반적이었다. 재임 중인 1965년에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해 한미일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한국 경제를 일본에 예속시킨 데 이어 1972년에 미국으로부터 오키나와를 반환받고 1974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토 에이사쿠가 죽은 1975년에는 국민장이 거행됐다. 이를 고려하면, 아베 신조에 대한 대우는 요시다 시게루 사례와 함께 역대급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역대급 대우에 대해 입헌민주당과 공산당은 '지켜보자'며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민당과 협력하는 극우정당인 일본유신회의 마쓰이 이치로 대표는 "반대하지는 않지만 조금 우려는 있다"며 "대대적인 장례에 찬성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반대하는 상당수 국민들의 목소리는 더 명확하다. 아베 신조와 관련된 비리 의혹도 밝히고 통일교와의 인연도 밝히는 것이 급선무라는 SNS 상의 의견도 있고,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위대한 정치가로 평가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취지로 비판한 하라 다케시 방송대 교수의 의견도 있다. 또, "아베는 평가가 갈리는 정치가"라며 국장 때문에 국론이 분열될 가능성을 우려한 요코다 고이치 규슈대 명예교수의 의견도 있었다.
이런데도 기시다 총리는 지난 14일 기자회견 때 언급한 것처럼 '탁월한 리더십과 실행력, 최장 기간 재임, 동일본대지진 수습, 일본경제 재생, 미일동맹 확대, 국제사회의 높은 평가,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한 광범위한 추도 분위기' 등을 이유로 국장 거행을 결정했다.
기시다 총리에게 국장을 권유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을 보면, 소속 의원이 93명으로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가 압력을 넣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에 더해, 국장 정국이 자신에게 불리하지 않다는 기시다 총리의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기시다에게 불리하지 않은 시간
자민당에서 절대 위상을 누렸던 아베 신조가 갑자기 떠난 데다가 2인자가 부재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합법적 당내 권력을 갖고 있는 기시다 자민당 총재가 가장 유리할 수밖에 없다. 아베가 피격된 8일부터 참의원 선거가 치러진 10일까지의 기간에 제4파벌 리더인 기시다는 제2파벌 및 제3파벌 리더인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 아소 다로 부총재와 함께 비상 상황을 이끌었다.
기시다는 제4파벌이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당분간은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끌 수 있는 조건들을 갖고 있다. 내년 4월경에 지방선거가 있고, 2025년에 참의원·중의원 선거가 있다. 당분간은 '대규모 전투'를 치를 일이 적기 때문에, 패전에 대한 책임을 질 일도 많지 않다.
여기다가 최대 파벌인 아베파가 충격에서 얼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점도 그에게 불리하지 않다. 13일 자 <지지통신> 기사인 '아베파, 후임 회장 두지 않고(安倍派、後継会長を置かず)'에 따르면, 아베의 파벌인 세이와(清和)정책연구회는 지난 11일 대책회의에서 시오노야-시모무라 공동 체제를 선택했다.
이 파벌 홈페이지(www.seiwaken.jp)에 따르면, 작년 11월 25일에도 당 총무회장을 지낸 시오노야 류(塩谷立)와 당 정무조사회장을 지낸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이 공동 회장대리였다. 지난 11일 이 파벌은 회장직을 비워둔 채 기존의 회장대리들을 사실상의 대표로 내세우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공동 회장대리 체제를 제약하는 시스템이 11일 회의에서 추가됐다. 두 명의 회장대리를 포함하는 7인의 비상 기구를 별도로 구성한 것이다. 관리인회나 운영회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세와닌카이(世話人會)라는 집단지도기구가 그것이다.
마츠노 히로카즈 관방장관과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상 등이 세와닌카이에 포함됐다. 회장대리들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고 별도의 집단지도기구를 만든 것은 지금 당장 이 파벌을 통합해낼 리더가 없을 뿐 아니라 파벌 구성원들의 상호 견제가 상당함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아베파가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의 추모 분위기를 발판으로 국장 정국을 이끌게 되면, 기시다 총리 입장에서는 리더십을 확충할 시간과 기회를 갖게 된다. 그래서 국장 정국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기시다에게 불리하지 않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유리할 게 별로 없다. 국장 이후의 정치환경이 기시다 같은 보수파(보수본류)보다는 아베 같은 극우파(보수방류)에 보다 유리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국장에 담긴 '상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