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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장례, 한 번 더'... 그 선택이 불러올 파장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아베 위해 국장 치르자는 기시다, 우려스러운 이유

등록 2022.07.17 16:17수정 2022.07.1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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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총격을 당한 일본 나라현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 앞 교차로 근처에 마련된 헌화대에서 10일 오후 시민들이 합장하고 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총격을 당한 일본 나라현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 앞 교차로 근처에 마련된 헌화대에서 10일 오후 시민들이 합장하고 있다.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위해 국장을 거행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12일의 가족장에 이어 올가을에 한 번 더 국장을 치르기로 한 것이다. 정부·자민당 합동 추모식도 있고 국민장이 있는데도, 상당수 국민들의 반발과 야당의 유보적 태도를 무릅쓰고 국장을 선택했다. 아베 신조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보내기로 한 것이다.

1967년에 세상을 떠난 요시다 시게루(재임 1946~1947년 및 1948~1954년)를 제외한 역대 총리들의 경우에는 합동장을 치르는 게 일반적이었다. 재임 중인 1965년에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해 한미일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한국 경제를 일본에 예속시킨 데 이어 1972년에 미국으로부터 오키나와를 반환받고 1974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토 에이사쿠가 죽은 1975년에는 국민장이 거행됐다. 이를 고려하면, 아베 신조에 대한 대우는 요시다 시게루 사례와 함께 역대급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역대급 대우에 대해 입헌민주당과 공산당은 '지켜보자'며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민당과 협력하는 극우정당인 일본유신회의 마쓰이 이치로 대표는 "반대하지는 않지만 조금 우려는 있다"며 "대대적인 장례에 찬성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반대하는 상당수 국민들의 목소리는 더 명확하다. 아베 신조와 관련된 비리 의혹도 밝히고 통일교와의 인연도 밝히는 것이 급선무라는 SNS 상의 의견도 있고,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위대한 정치가로 평가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취지로 비판한 하라 다케시 방송대 교수의 의견도 있다. 또, "아베는 평가가 갈리는 정치가"라며 국장 때문에 국론이 분열될 가능성을 우려한 요코다 고이치 규슈대 명예교수의 의견도 있었다.

이런데도 기시다 총리는 지난 14일 기자회견 때 언급한 것처럼 '탁월한 리더십과 실행력, 최장 기간 재임, 동일본대지진 수습, 일본경제 재생, 미일동맹 확대, 국제사회의 높은 평가,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한 광범위한 추도 분위기' 등을 이유로 국장 거행을 결정했다.

기시다 총리에게 국장을 권유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을 보면, 소속 의원이 93명으로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가 압력을 넣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에 더해, 국장 정국이 자신에게 불리하지 않다는 기시다 총리의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기시다에게 불리하지 않은 시간 


자민당에서 절대 위상을 누렸던 아베 신조가 갑자기 떠난 데다가 2인자가 부재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합법적 당내 권력을 갖고 있는 기시다 자민당 총재가 가장 유리할 수밖에 없다. 아베가 피격된 8일부터 참의원 선거가 치러진 10일까지의 기간에 제4파벌 리더인 기시다는 제2파벌 및 제3파벌 리더인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 아소 다로 부총재와 함께 비상 상황을 이끌었다.

기시다는 제4파벌이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당분간은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끌 수 있는 조건들을 갖고 있다. 내년 4월경에 지방선거가 있고, 2025년에 참의원·중의원 선거가 있다. 당분간은 '대규모 전투'를 치를 일이 적기 때문에, 패전에 대한 책임을 질 일도 많지 않다.


여기다가 최대 파벌인 아베파가 충격에서 얼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점도 그에게 불리하지 않다. 13일 자 <지지통신> 기사인 '아베파, 후임 회장 두지 않고(安倍派、後継会長を置かず)'에 따르면, 아베의 파벌인 세이와(清和)정책연구회는 지난 11일 대책회의에서 시오노야-시모무라 공동 체제를 선택했다.

이 파벌 홈페이지(www.seiwaken.jp)에 따르면, 작년 11월 25일에도 당 총무회장을 지낸 시오노야 류(塩谷立)와 당 정무조사회장을 지낸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이 공동 회장대리였다. 지난 11일 이 파벌은 회장직을 비워둔 채 기존의 회장대리들을 사실상의 대표로 내세우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공동 회장대리 체제를 제약하는 시스템이 11일 회의에서 추가됐다. 두 명의 회장대리를 포함하는 7인의 비상 기구를 별도로 구성한 것이다. 관리인회나 운영회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세와닌카이(世話人會)라는 집단지도기구가 그것이다.

마츠노 히로카즈 관방장관과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상 등이 세와닌카이에 포함됐다. 회장대리들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고 별도의 집단지도기구를 만든 것은 지금 당장 이 파벌을 통합해낼 리더가 없을 뿐 아니라 파벌 구성원들의 상호 견제가 상당함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아베파가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의 추모 분위기를 발판으로 국장 정국을 이끌게 되면, 기시다 총리 입장에서는 리더십을 확충할 시간과 기회를 갖게 된다. 그래서 국장 정국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기시다에게 불리하지 않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유리할 게 별로 없다. 국장 이후의 정치환경이 기시다 같은 보수파(보수본류)보다는 아베 같은 극우파(보수방류)에 보다 유리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국장에 담긴 '상징성' 
 
 9일 오후 일본 도쿄도 시부야구 소재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자택 앞 골목에 기시다 후미오 총리 일행의 차량이 정차한 가운데 경찰이 경계 근무 중이다.
9일 오후 일본 도쿄도 시부야구 소재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자택 앞 골목에 기시다 후미오 총리 일행의 차량이 정차한 가운데 경찰이 경계 근무 중이다.연합뉴스
 
아베 신조의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극우보다는 보수에 가까울 수 있지만, 소수민족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외국에 대한 공세적 대응을 주장할 뿐 아니라 현행 헌법의 틀을 깨고 민족주의를 강화하려 하는 정치인은 일반적으로 극우로 분류된다.

또 아베파보다 온건한 아소파(49명)와 기시다파(44명)도 정계에서 자리를 잡고 있으므로, 아베파를 보수파로 분류하게 되면 아소파·기시다파를 마땅히 규정할 수 없게 된다. 아베 신조가 극우파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도 극우파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아베 신조를 위해 국장을 치르게 되면, 그동안 요시다 시게루가 갖고 있던 독점적 위상에 금이 가게 된다. 바로 이 부분이 향후 일본사회에서 극우파의 입지를 더욱 제고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기시다파에 마이너스 요인이 될 가능성이 현저하다.

메이지유신 10년 뒤인 1878년, 무사 다케우치 쓰나의 아들로 태어난 요시다 시게루는 바로 그해에 투옥되고 사족 신분을 잃는 바람에 아버지 친구인 요시다 겐조의 보살핌을 받게 되고 세 살 때 양자가 됐다. 11세 때 양부의 유산을 받아 갑부가 된 요시다 시게루는 게이오의숙과 도쿄제국대학을 거쳐 28세 때인 1906년 외교관시험에 합격하고 중국·영국·이탈리아 등에서 근무했다.

1935년에 퇴직한 그는 정계로 진출해 이듬해에 히로타 고키 내각을 출범시키는 데 기여했지만, 친미파라는 이유로 정계에서 밀려난 뒤 영국대사를 지내기도 했고 반전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그랬다가 미군정이 들어선 뒤로 다섯 차례나 내각을 출범시켰다. 자기 아버지가 투옥된 뒤 양아버지를 만나 갑부가 됐던 그는 자기 나라가 패망한 뒤 후견국을 만나 장수 총리의 길을 걸었다. 그런 다음, 일본을 재건하고 주권을 되찾는 데 역할을 했다.

그는 아베 신조의 스승이자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A급 전범)와 대립했다. 그는 보수본류였고 기시는 보수방류였다. 총리 시절인 1957년에 핵무장까지 주장하면서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회복하고자 했던 기시와 달리, 그는 일본의 패망을 인정하고 미군의 힘을 빌려 안보 비용을 줄이고 경제성장에만 주력하고자 했다. 한국전쟁에 병력을 보내라는 미국의 요청도 거절했을 정도다.

그는 전쟁을 영구히 포기하고 군대를 갖지 않겠다고 선언한 일본 헌법 제9조(평화헌법) 하에서 최고의 리더십을 발휘한 정치인이었다. 기시 노부스케처럼 반인류적인 꿈을 품는 무모한 야망가는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일본은 요시다 시게루를 위해서만 국장을 해주었다. 요시다가 세상을 떠난 1967년에도 국장 거행에 대한 반발이 있기는 했지만, 패망 이후의 일본에서 국장이 거행된 사례는 그의 장례식 뿐이었다.

이것이 갖는 상징성은 적지 않다. 요시다를 위해서만 국장이 거행됐다는 것은 공식적으로는 그가 가장 위대한 정치가로 공인받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요시다 같은 인물이 가장 훌륭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면, 일본이 또다시 무모한 대외침략에 나설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 기시 노부스케의 손자이자 극우파의 대부인 아베 신조를 위해서도 국장이 거행되고 아베 역시 요시다 시게루만큼 훌륭한 인물로 평가된다면, 이는 일본 민중뿐 아니라 동아시아인들에게도 위험한 일이다. 

그에 더해, 극우 정치인이 '국가 공식 위인'으로 지정되면, 기시다 같은 보수파의 입지도 장기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아베 국장이 당장에는 기시다의 입지를 개선시켜줄 수 있어도 길게 보면 보수본류의 영향력을 축소시킬 공산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가족장에 이어 국장까지 거행해 아베를 두 번 보내게 되면, 아베가 더 크게 살아나 이웃나라들을 한층 더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든다. 
#아베 신조 국장 #아베 국장 #요시다 시게루 #일본 국장 #일본 국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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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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