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등록된 '느긋한쌀빵' 가게 사진
느긋한쌀빵
구례에는 대규모 생협 매장을 포함해 각종 문화·체험 시설을 복합적으로 갖춘 '아이쿱자연드림파크'가 있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대형마트 같은 곳이기에, 읍 외곽에 있는 작은 점빵으로는 애당초 게임이 안 되는 상대다. 아닌 게 아니라 초반에는 '의도가 좋다'며 점빵을 응원차 방문하던 사람들이 얼마 안 가 효율성과 편의성을 이유로 다시 그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다고.
"생물은 남으면 폐기를 해야 하니까 처음엔 사전 주문을 받았어요. 그러다 보니 주문 안 하고 오는 손님들한테는 팔 물건이 없는 거예요. 또 생물은 보통 조기 마감되는 경우가 많고 주문 후에 결품 통보가 오기도 하더라고요. 소비자로서는 분명 아쉬운 부분이죠." (승아)
현재는 주문을 받긴 하되 생물도 일반 물품처럼 그때그때 '적당한' 양을 들이는 방식으로 변화를 주었다. 다행히 이 일을 담당하는 강 대표의 '촉'이 뛰어나 폐기되는 건 많지 않다. 또 올해 들어서는 공동구매 같은 이벤트를 활성화하는 한편 작년에 코로나19로 주춤했던 '두루다살림장'도 다시 시작해 격주로 여는 등, 여러 방법을 통해 점빵에 대한 관심과 신뢰도를 높이려 애쓰는 중이다.
"산취, 두릅 같은 봄나물로 시작해서 구례 문척 수박, 진주텃밭 토마토 같은 것을 공동구매했는데 참여한 분들의 만족도가 높더라고요. 그런 걸 하면 자연스럽게 여기 와서 장을 보게 만드는 효과도 있어요. 또 두루다살림장은 아직은 참여하는 생산자가 그리 많지 않지만, 지금은 작게라도 꾸준히 하는 게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은경)
"사실 그런 이벤트를 하면 신경 쓸 건 많은데 수익으로 돌아오는 건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사장님한테 잔소리를 하죠. 하면 할수록 손해라고(웃음). 하지만 사장님의 경영철학을 존중하고 또 우리가 지역생협을 목표로 하니까 감수하고 하는 거예요." (슬기)
조건이 불안정해도 행복할 순 있다
목표가 뚜렷하고 그에 따라 벌이는 일들이 있다 보니 공간의 협소함이 아쉬울 때가 있다. 공동구매라도 하는 날이면 들여놓은 물품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여서 가끔은 '확장 이전'이니 빵집과 점빵의 '분리'니 하는 얘기가 나오곤 한다. 두루다살림장 또한 서시천 같이 너른 데로 나가서 하면 더 낫지 않겠냐고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 일리 있는 말인데 지금은 확장보다는 점빵도 장터도 안정되게 자리를 잡는 게 우선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무엇보다 이 점빵이 참 좋거든요? 동네 사람들이 걸어와서 필요한 걸 사 가고, 또 돈이 없어도 편하게 외상으로 달아놓을 수 있는 이런 데가 지금은 시골에도 별로 없잖아요." (은경)
여전히 '안정성'을 고민하는 단계라지만 '느긋한 쌀빵/점빵'이 점점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지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듯하다. 지난 일이 년 사이 봉서리로 귀촌하는 비혼 여자들이 부쩍 늘었다는 게 그 증거 아닐까. 게다가 얼마 전에는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책방이 들어섰고, 같은 멤버인 윤주옥씨가 일하는 국시모 사무실도 그 옆 건물로 옮겨왔다.
이를 두고 "봉서리가 우리 덕분에 드디어 '핫플'이 된 거 아니냐"며 세 여자는 목소리를 키운다. 누가 선점하기 전에 빨리 방앗간 내고 두부 만드는 마을기업도 세우고 기왕이면 '느긋한 주점'까지 개업하자고, 서로 신나게 농담도 주고받는다. 이처럼 웃음기 가득한 말들이 여유로우면서도 단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굽이굽이 좁고 험한 길을 함께 달려오는 사이 그들 안에 쌓인 내공이 그만큼 강해졌기 때문이리라.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주로 했고 구례 와서도 계속 주5일 근무를 했었어요. 그와 비교하면 지금 하는 일은, 물론 힘든 점도 많지만 주어진 업무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찾아서 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슬기)
"아직은 조건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때로는 가게 안이 살얼음판 같을 때도 있고 늘 평화롭진 않아요. 하지만 여기는 우리가 함께 만든 공간이니까 적어도 눈치 볼 필요는 없잖아요. 슬기 말처럼 각자가 주체가 돼서 일할 수 있고요. 또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일하고 있고 갈등이 생겨도 대화로 소통해서 풀 수 있는 관계라는 거, 그게 무엇보다 만족스럽죠." (승아)
끝내 우리가 느긋해질 수 없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