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지난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을 지켜보던 중 휴대폰을 펼쳐 윤석열 대통령과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고 있다. '대통령 윤석열'로 표시된 발신자는 "우리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권 직무대행은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되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공동취재사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막지 못한 1997년의 김영삼 정권도 '망중한(忙中閑)'을 누렸다. 외환위기가 다가온다는 경고가 쏟아져 나오는데도 대검찰청에 불법적 메시지를 보내 이른바 '메모 파동'을 일으켰다.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기로 결정한 날은 그해 11월 21일이다. 하지만 외환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가 나온 것은 훨씬 이전이다. 한국의 국가신인도를 떨어트리고 IMF 발생에도 영향을 준 한보철강 부도(한보사태)가 발생한 1월 23일 이전에도 그런 신호가 나왔다.
그해 1월 8일자 <한겨레> 기사 '한국·동남아 4국 외환위기 가능성'은 현대경제사회연구원이 현대그룹 최고 경영진에게 보고한 'VIP 리포트' 내용을 소개하면서 "타이 등 동남아 4개 신흥공업국과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에 지난 94년 외환위기를 맞은 멕시코와 비슷한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어, 외환위기가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며 위험성을 알렸다.
2월 3일자 <조선일보> 사설 '한보와 국제금융'은 "우리가 심각하게 우려하는 것은 이미 한보 부도 사건이 나기 훨씬 이전인 작년 하반기부터 우리의 경상적자가 가속화되고 외채 누적이 급증하면서부터 대외 차입 환경이 서서히 약화되어온 점"이라고 한 뒤 "이미 국제 시장에는 한국의 주요 단기자금 루트가 잇달아 봉쇄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은행까지 '조심하라'는 경고를 한국은행에 해줬을 정도다. "최근 일본 중앙은행이 일본 내 한국계 은행들의 자금 부족 사태에 대해 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토록 한국은행에 요청했다는 보도 또한 현재 상황의 심각함을 잘 보여준다"고 기사는 말했다.
상황이 그런데도 김영삼 정권은 외환위기를 막는 데 전력하기보다는 한보사태 불똥이 정권에 튀지 않도록 하는 데 필요 이상의 주의를 기울였다.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의 정·관계 로비 실태가 폭로돼 청와대와 여권은 물론이고 정권 실세인 대통령 아들 김현철에게까지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선적으로 우려했다.
그런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 한보 사건를 수사 중이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발견된 메모지들이었다. 그해 4월 18일 SBS가 보도하고 19일부터 신문들이 대서특필한 이 쪽지에는 '수사를 어디까지 해야 할 것인가'를 지시하는 가이드라인이 적혀 있었다. 4월 21일자 <한겨레> 3면 사설은 "권력 핵심이 말로는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하면서도 속으로 온갖 압력을 가하고 있다"며 메모지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 총무수석이 구속된 데 이어 전직 경제수석까지 사법처리되면 정권에 큰 부담이 되니 사법처리는 절대 안 되며, 은행장들도 개인 비리 차원이면 몰라도 배임 혐의로 처벌할 경우 금융계가 마비되니 사법처리해선 안 된다."
검찰 수사에 대한 불법적 개입을 보여주는 이 메모지는 검찰 내부에서 작성됐을 것이라는 게 검찰 주변의 지배적 시각이었다. 하지만 누가 작성했든 메모 내용은 검찰 외부의 의중을 반영했다. 위 보도에 따르면, 쪽지에는 "누구보다 검찰을 아끼는 사람인데, 내가 이렇게 얘기할 때는 나를 믿어보라" "검찰도 국가의 일부분이 아니냐"라는 대목도 있었다. 검찰 고위 간부들을 상대로 이런 말을 할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되겠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 메모는 전화를 통한 외압성 발언을 검찰 측이 받아서 적은 것이었다. 4월 21일자 <조선일보> 사설에도 보도됐듯이, 심재륜 중앙수사부장은 "전화가 외압이라면 그런 것은 있다"는 말로 외압의 존재를 시인했다.
같은 날 보도된 <경향신문> 7면 우상단은 "청와대 관련설이 가장 유력하다"며 "이는 메모의 내용이 상당히 고압적이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했다. 누가 전화를 걸었든 간에 청와대 쪽이 김영삼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해 전화를 걸었고 검찰이 이를 받아 적었다는 시각이 가장 우세했다.
이 시점은 한보 사태가 IMF 위기로 이행하는 중간이었다. 그런 비상시국에 발생한 메모 파동은 국가부도보다는 정권 안위를 더 우려했던 김영삼 정권의 안일한 상황을 반영한다. 외환위기를 막기 위해 전력투구를 다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마당에 정권이 이와 같은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윤석열 정권과 차이가 있다면,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했다는 점 정도다.
미국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이 아니라 점보 점프를 할 수도 있을 정도로 세계 경제가 위태로운 2022년이다. 이런 시기에 '외부 위기'보다는 '내부 총질'을 소재로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메시지를 주고 받는 모습은 한국 경제와 민생에 대한 우려를 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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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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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윤 대통령이 신경쓸 건 '외부 총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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