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님과 함께 야외 구장에서 연습 중. 옥상 끝으로 지는 노을이 선명하다.
이지은
나 때문에 생기는 결함들을 지켜보기가 힘들고 함께하는 이들에게 민망해 입에 "미안해"를 달고 다녔다. 언젠가 영은 내게 "저 언니는 내가 뭐라 하려고 쳐다보면 이미 고개 숙이고 민망한 미소 짓고 있어서 화를 못 내겠다? 너무 예의가 바라서 탈이야"라고 했는데, 살면서 처음으로 '예의바르다'가 칭찬이 아니게 들렸다. 왜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음에도 나는 스스로를 '미안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만드는가.
한번은 경기 중에 내 패스 미스가 공을 라인 밖으로 내보냈다. "악! 미안!" 소리치며 두 손 모아 사과하는 나를 뒤에서 지켜보던 골키퍼 요다가 큰 소리로 한 마디 했다.
"지은 언니! 미안해 할 시간에 한 발 더 뛰세요!"
상대는 수없이 우리 골문을 두드리고, 우리는 공 걷어내느라 정신없는데 사과할 시간 아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이 몸을 놀리라는 주문이었다. 그러게. 치열한 싸움터 한가운데에서 두 손 모아가며 "미안해"를 건넬 시간이 어디 있나.
방금 한 실수가 문제라면 빨리 달려가 만회하면 된다. 결자해지. 문제를 유발한 사람이 풀어내는 것이다. 못 풀면 뭐, 하는 수 없고.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니 옆자리 친구가 대신 메꿔주겠지. 아니면 빌드업부터 다시 시작하거나.
미안해하지 말라는 건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밥에 말아먹은 듯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라는 뜻이 아니다(배려 없는 플레이로 파울을 만들었다면 분명 정중하게 사과해야 한다. 우리는 스포츠하는 거지, 패싸움하는 게 아니니까). 이는 좀 더 스스로의 실수에 관대해지고 의연하라는 의미다.
인간은 시행착오로 성장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아기는 혼자 걸어보려다가 넘어졌다고 해서 양육자에게 사과하지 않는다. 한번 빽 울고 난 다음에 여력이 될 때 다시 시도할 뿐이다. 그렇게 수백, 수천 번 넘어진 끝에 그 어떤 지지대 없이 두 발로 우뚝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안해' 버리기 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