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두타산에 눈이 내리고 130x80cm 2012년작
박병춘
처음에는 따뜻하고 소박한 서정적 자연주의 작품을 그렸다. 예를 들면 담벼락, 수원 화성의 성벽, 바윗덩어리 위의 담쟁이덩굴 같은 것이다. 어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시대 흐름 속에서 내 그림이 진부해 보였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내 개성을 살려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형식은 약간 초현실주의적인 느낌이었다, 비무장 지대를 그렸는데, 철조망이 하늘에 떠 있는 그림을 예로 들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한 바퀴 돌린 듯한 느낌의 그림이었다. 이 또한 고뇌했다. 내 사고가 현실과 동떨어지고 남들과 다른 사람이 되는 느낌이었다.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고 내가 한 단계 더 위에 있다는 비합리적인 느낌이 들었다. 망상과 공상에 빠져 있다는 느낌이 짓눌렀다,
1987년 6월 항쟁을 경험했다. 나는 당시 화가였지만 골방에서 그림만 그릴 수는 없었다. 대학생들의 시위가 대견스러웠다. 대학생 제자들이 감옥에 가기도 했다. 시대와 사회에 관심이 생겼다. 민중을 위한 사회과학 서적에 몰입했다. 화가로서 시대의 아픔과 함께 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얻었다. 5.18 민주 항쟁 관련 자료를 찾아 그림을 그렸다. 슬픈 교육 현장 그림도 그렸다. 10년가량 가열차게 민중미술을 지향했다. 노동, 환경, 통일, 위안부 문제 등 사회 전반의 부패한 권력과 부조리에 맞서는 투쟁 대열에 함께 했다. 나는 현실과 괴리될 수 없다. 대중과 소통은 필수였다. 내 그림이 투쟁 현장에서 의미 있게 활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