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의 탑동 바다바다 가까운 이 병원에 있을 때는 우리 병실 간병사님 두 분이 새벽마다 산책을 나가셨다. 창문을 내다보다가 저멀리 두 분이 걷는 모습이 보이길래 사진을 찍었다. 많이 확대해야 겨우 찾을 수 있을 만한 크기이다. 손자들에게 할머니 찾아보라고 보내시라며 사진을 두분에게 보내드렸다.
이진순
무수한 허드렛일로 유지되는 일상
간병이라는 것이 힘들고 고된 박봉의 일이라 한국인들은 간병을 하려는 사람이 적고, 간병인의 90% 정도인 20만 명 정도가 중국동포라고 한다. 간병사님도 그중 한명이다. 간병사님이 쓰는 말투나 단어는 당연히 남한의 우리들과는 꽤 다르다. 들어본 지 오래됐지만, 어렸을 적부터 익숙했던 단어들을 간병사님을 통해 듣곤 했다.
예를 들면, 목욕을 시키려다가 때수건을 안 갖고 왔다며 "제까닥 가서 가져올까?"라고 간병사님이 묻는다. "제까닥 갔다 오는 사이에 누가 제까닥 문 열면 어떡해?"라고 맞받으며 웃었다. 성격이 급했던 아버지가 종종 썼던 '제까닥'은 '얼른, 바로'를 뜻하는 북한 말이다.
입원 중 특히 초기에는 누워 있다가 갑자기 또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다가 눈물이 주르륵 흐를 때가 종종 있었다. 사고 당시를 상상하거나 지금의 상황을 떠올리다가 그런 순간들이 문득 문득 찾아오곤 했다.
그럴 때 간병사님은 애써 위로의 말을 찾거나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항상 옆에 있는 사람이 위로하려 애쓰는 스타일이었다면, 불편하고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그 시간이 지나길 말없이 기다려준 덕에 나는 조금 더 편하게 내 감정을 풀어낼 수 있었다.
간병사님에게서 그동안의 간병 경험을 들어보니 간이침대가 있는 것은 양반이고, 맨바닥에서 자야 하는 병원도 많다. 바닥의 냉기가 너무 심해서 담요 한 장만 더 달라고 부탁하면, 이미 한 장 받아가지 않았냐고 찬바람 불게 쏘아대는 간호사들도 있다고 했다.
냉기를 막아줄 작은 핫팩을 사던지 다른 간병인을 통해서 환자가 쓰는 것처럼 둘러대서 담요를 얻기도 했다. 병원마다 또 개별 간호사마다 간병인들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큰 것 같다.
의료업계에서는 간병인에 대해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지만 가장 필요한 존재, 생명의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또 한편에선 '전문성이 요구되지 않는 허드렛일을 하는 존재'라며 무시하는 인식도 분명 존재한다. 우리의 일상은 무수한 허드렛일로 이루어진다. 우리 삶의 가치는 이런 일상의 허드렛일 속에서 피어나는 어떤 것 아닐까?
대통령이 후보였던 시절, 취업을 준비 중인 젊은이들을 만나서 '손발로 노동해 가지고 되는 건 없다, 인도도 이제는 안 하고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다'라고 했던 말을 기억한다. 물론 맥락상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느라 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 사회에는 땀 흘리며 손발로 노동하는 무수한 노동자들이 있고, 그들이 지금의 이 사회를 있게 한 주역이기도 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코로나19 방역 현장, 자연재해의 현장, 돌봄의 현장 등 무수한 현장에서 인간의 손과 발이 사람과 사회를 살리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미래의 기술이 인간적 기술이기 위해서는 손발노동에 대한 무시, 아프리카에 대한 무시를 전제로 한 기술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머리로만이 아니라 마음과 손발로 내 삶을 가능케 해주셨던 간병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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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겨울밭, 붉은 동백의 아우성, 눈쌓인 백록담,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포말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제주의 겨울을 살고있다. 그리고 조금씩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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