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공
이지은
이런 강퍅한 나인데도 따르는 후배들이 몇 있다. 세봉은 그 가운데에서도 첫째가는 친구다. 얼마나 나를 따르냐 하면 내가 좋아서, 나와 함께하고 싶어서 축구를 시작했을 정도다. 점심을 나누며 요즘 축구에 빠졌다고 한껏 떠들어대는 나를 쫓아 구장까지 왔다. 덕분에 직장을 옮긴 지금도 주말마다 시간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언젠가 세봉이 내게 MBTI를 물었다.
"선배의 MBTI 모든 알파벳이 저와 정반대인 거 아세요?"
INFP. 신중하고 직관적이며 감정이 풍부하고 융통성이 있는 타입. 사수와 부사수 관계였던 우리는 회사 안에서 곧잘 맞았다. 건조하게 팩트만 건네는 나를 그는 잘 견뎌주었고, 쉽게 감정이 올라갔다가 가라앉는 그를 나는 곧잘 진정시켰다. 일희일비하는 그에게 늘 "순리대로 하세요"라고 말을 건네곤 했고, 그러면 세봉의 마음은 금세 잦아들었다.
"순리대로 하라"는 말에 깔린 전제
문제는 그라운드에만 서면 내 돌파력이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미니 게임을 함께하던 날, 세봉과 내가 한 팀이 되었다. 10분짜리 경기에 믿을 건 둘밖에 없는 상황에서 세봉은 5분 만에 "악! 힘들어. 더는 못 뛰겠어요"라며 고장난 로봇처럼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나는 "이따가 쉬어요. 5분 뒤에 쉬면 되잖아"라며 주저앉으려는 그를 일으켜세웠고, 결국 10분을 오롯이 뛰게 만들었다.
시합이 끝나고 세봉은 서운함이 잔뜩 묻은 얼굴로 내게 "왜 선배는 회사에서는 '순리대로 하라'고 하면서 경기장에서는 '이따 쉬어. 5분 뒤에 쉬어'라고 해요?"라고 항변했다. 그에게 물었다.
"응? 다리 부러진 거 아니잖아. 쥐난 거 아니잖아."
그의 입장에서는 내가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사람처럼 보였던 것이다. 반면 나로서는 그 하소연이 당황스러웠는데, 내 기준에 '순리대로 하라'와 '5분 뒤에 쉬라'는 다른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리대로 하라'는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것에 속상해하지 말라는 의미다.
신입이 아무리 시간과 노력을 쌓아도 이미 수 년, 수십 년 이 일을 해온 선배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냥 그 구멍들을 인정하고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는 '역시 난 안 돼'라며 자포자기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주어진 조건에 따라 노력했다면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의 결과는 겸허하게 받아들이라는 뜻에 가깝다.
열심히 했는데 안 되는 걸 어쩌겠는가. 그렇게 시행착오를 하나둘 쌓아올리다 보면 이내 만족할 만한 결과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 '순리'에는 '최선의 노력'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