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 시인의 시집
걷는사람
'행복'은 우리가 모두 추구하는 이상입니다. 세종시를 '행복도시'라고 이름 붙인 까닭을 짐작해보면 세종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붙잡을 수 없을 정도의 거리가 생깁니다.
'행복도시'에 사는 아이들도 제 막내 아이가 저에게 물었던 것처럼, '왜 공부를 해야 해요?'라고 반문할 것입니다(제 큰아이 얘기인데요, '너 왜 공부하니?'라는 아내의 질문에, '엄마가 시켜서'라고 대답했다가 큰 사달 난 적이 있습니다). 특히나 공부를 '피 흘리는 것'에 비유한 시의 문장이 참, 마음 아픕니다. 청년들도 아이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진로가 정해져 있는 태풍이 부럽다'라는 한 청년의 말은 제가 사는 용인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편리와 행복은 같은 의미의 단어가 아니다
행복하기를 바라서 '행복도시'라는 이름까지 붙였는데, 행복하지 못한 아이들과 청년들이 사는 도시, (세종뿐만이 아니라) 모든 도시가 가진 아이러니일 것입니다. 크게 양보해서 청년과 아이들만 행복하지 못한 도시라면 어떨까요. 그나마 다행일 것입니다. 저들을 제외한 다수가 남았으니까요. 하지만 그 나머지 사람들은 행복할까요. 행복할 수 있을까요.
'가장 부유한 동네인 강남구에 살면 행복할까?'라는 질문은 어떻습니까. 언뜻 편리할 수는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직장이 서울이라면, 경기도에 사는 저처럼 출퇴근에 시달릴 일도 없을 것이고 생활·문화시설도 잘되어 있습니다. 대중교통도 편리하고요.
편리와 행복이 같은 단어라면, '강남구는 어느 지역보다 행복하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요, 편리와 행복은 같은 의미의 단어가 아닙니다. 억지로 말한다면 편리는 행복의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종종 행복과 편리를 혼동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을 드려 보겠습니다. '당신이 돈을 많이 벌려는 까닭 무엇입니까?'라고. 이와 같은 질문에 우리는 보통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편리이지 행복이 아닙니다. 좋은 차를 타는 것, 비싼 옷을 입는 것, 편리하기 위해서입니다.
편리함이 행복과 같다면, 부자들은 모두 다 행복해야 합니다. 돈이 많을수록 더 행복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편리하게 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부자들이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편리해 보일 뿐입니다. 더군다나 편리는 삶 속에서 금방 익숙해지고, 편리가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 때 편리는 편리가 아닌 것이 되어 버립니다.
행복도시도 어쩌면 사람들의 '행복'보다 '편리'에 맞춰 만들어진 도시가 아닐까요.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행복을 원한다'라고 말하면서 추구하는 것은 편리일 뿐입니다. 진정한 행복도시가 존재할 수 없는 까닭,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조금 구불구불하고 불편해도 사람 살아가는 냄새가 나는 곳, 그곳이 바로 행복도시의 기본 조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해 봅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이종수 시인은...
전남 벌교에서 태어나 199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집 『자작나무 눈처럼』 등이 있으며, 청주에서 작은도서관 '참도깨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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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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