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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도시' 아이들의 시가 가슴 아픕니다

이종수 시인의 시 '행복도시'

등록 2022.09.23 13:49수정 2022.09.2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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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행복도시

조치원 읍내 작은도서관에서
초·중·대학생 합반으로 시 쓰기 수업
안면 트고 시가 될 만한 이야기가 있을까 싶어
조치원역이며 시장 이야기를 했더니
이곳에 살지 않아 모른단다
어디서 왔느냐 물으니
행복도시에서 왔단다
행복도시가 어디냐 물으니
세종시란다
조치원이 세종시가 된 것은 모르지 않으나
세종시가 행복도시였다니!
그러니 이 아이들은 행복도시를 넘어
조치원 읍내에 불시착한 것처럼
더는 물어보지 말라는 얼굴빛이었던 것이다


행복도시에서 온 아이들의 시는 이랬다

"지금의 나는 너무 힘들어/나중에 뭐가 될지도 몰라/공부하기도 싫어"(○○○.초등 5학년)
"졸리다/지루하다/짜증난다/답답하다/후회된다/재미없다/너랑 있으면 생기는 기분이야."(○○○초등 5학년)
"우리는 왜 피를 흘리며/책과 공부의 노예가 되었을까?//우리는 언제쯤 책과 공부로부터 해방되어/'나'의 노예가 될 수 있을까?"(○○○,초등 4학년)
"태풍은 좋겠다/진로가 정해져 있어서//태풍은 지금의 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길을 바꿀 수도 있어 좋겠다//나도 태풍처럼 누가 정해 주지 않는/내가 원하는 길로/가고 싶다."(○○○,대학 2학년)

조치원이 복숭아로 이름난 것이나
무궁화호 새마을호 타고 목포, 진주 가는 건 알 필요 없는
아이들이 시 한 편씩 쓴 것만으로도 개갈날 일이지만
문득 아이들이 넘어갈
행복도시가 궁금해졌다

- 이종수, <빗소리 듣기 모임>, 걷는사람, 2022년, 50~51쪽


대전에서 살다가 용인으로 다시 이사한지도 20년이 넘어갑니다. 그전까진 대전에서 20여 년을 살았으니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대전입니다'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전에 살면서 대전 인근 도시를 자주 다녔던 것은 아니지만, 공주와 금산, 조치원과 같은 도시의 이름은 저에게도 익숙합니다.


대학에 진학한 뒤 용인에서 자취할 때, 경부 고속도로가 막히면 천안 – 조치원 국도를 통해 대전을 오가곤 했습니다. 이때 다녔던 조치원을 떠올리면, 그렇게 큰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서울 모 사립대학의 캠퍼스가 있어,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었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눈여겨보고 있던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조치원의 지명이 바뀐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곳으로 행정수도가 들어오고 이름도 '조치원읍'에서 '세종시 조치원읍'으로 바뀐다고. 조치원이 세종시로 바뀐다고 지명이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겠지만, 제 귀에는 아직도 세종시와 조치원은 아무런 관계없는 지명으로 들립니다.


예전에 몇 번 세종시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처제가 세종시의 근처에 살아서. 지나가야만 했습니다. 건물들이 깨끗하게 새로 지어져 있어 '이곳에 살면 무엇이든 새로 시작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해본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의 시를 읽으니 다른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껴집니다.
  
 이종수 시인의 시집
이종수 시인의 시집걷는사람
 
'행복'은 우리가 모두 추구하는 이상입니다. 세종시를 '행복도시'라고 이름 붙인 까닭을 짐작해보면 세종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붙잡을 수 없을 정도의 거리가 생깁니다.

'행복도시'에 사는 아이들도 제 막내 아이가 저에게 물었던 것처럼, '왜 공부를 해야 해요?'라고 반문할 것입니다(제 큰아이 얘기인데요, '너 왜 공부하니?'라는 아내의 질문에, '엄마가 시켜서'라고 대답했다가 큰 사달 난 적이 있습니다). 특히나 공부를 '피 흘리는 것'에 비유한 시의 문장이 참, 마음 아픕니다. 청년들도 아이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진로가 정해져 있는 태풍이 부럽다'라는 한 청년의 말은 제가 사는 용인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편리와 행복은 같은 의미의 단어가 아니다

행복하기를 바라서 '행복도시'라는 이름까지 붙였는데, 행복하지 못한 아이들과 청년들이 사는 도시, (세종뿐만이 아니라) 모든 도시가 가진 아이러니일 것입니다. 크게 양보해서 청년과 아이들만 행복하지 못한 도시라면 어떨까요. 그나마 다행일 것입니다. 저들을 제외한 다수가 남았으니까요. 하지만 그 나머지 사람들은 행복할까요. 행복할 수 있을까요.

'가장 부유한 동네인 강남구에 살면 행복할까?'라는 질문은 어떻습니까. 언뜻 편리할 수는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직장이 서울이라면, 경기도에 사는 저처럼 출퇴근에 시달릴 일도 없을 것이고 생활·문화시설도 잘되어 있습니다. 대중교통도 편리하고요.

편리와 행복이 같은 단어라면, '강남구는 어느 지역보다 행복하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요, 편리와 행복은 같은 의미의 단어가 아닙니다. 억지로 말한다면 편리는 행복의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종종 행복과 편리를 혼동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을 드려 보겠습니다. '당신이 돈을 많이 벌려는 까닭 무엇입니까?'라고. 이와 같은 질문에 우리는 보통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편리이지 행복이 아닙니다. 좋은 차를 타는 것, 비싼 옷을 입는 것, 편리하기 위해서입니다. 

편리함이 행복과 같다면, 부자들은 모두 다 행복해야 합니다. 돈이 많을수록 더 행복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편리하게 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부자들이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편리해 보일 뿐입니다. 더군다나 편리는 삶 속에서 금방 익숙해지고, 편리가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 때 편리는 편리가 아닌 것이 되어 버립니다.

행복도시도 어쩌면 사람들의 '행복'보다 '편리'에 맞춰 만들어진 도시가 아닐까요.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행복을 원한다'라고 말하면서 추구하는 것은 편리일 뿐입니다. 진정한 행복도시가 존재할 수 없는 까닭,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조금 구불구불하고 불편해도 사람 살아가는 냄새가 나는 곳, 그곳이 바로 행복도시의 기본 조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해 봅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이종수 시인은...

전남 벌교에서 태어나 199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집 『자작나무 눈처럼』 등이 있으며, 청주에서 작은도서관 '참도깨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시와 산문은 오마이뉴스 연재 후,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blog.naver.com/yhjoo1)에 공개됩니다.
#이종수시인 #행복도시 #걷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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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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