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함께 희망으로 나아가기

[다산인권센터 30주년] 사람과 함께 나아가는 법을 배운 다산인권센터

등록 2022.10.17 18:08수정 2022.10.18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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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권센터는 올해 30년을 맞이하여, 달려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기록작업입니다. 다산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는 전·현직 활동가, 다산의 활동과 만났던 시민들이 필진으로 참여하여 다산인권센터와의 인연, 활동의 의미에 대해 기록할 예정입니다. 이 기록을 오마이뉴스를 통해 다양한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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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권센터는 격주 수요일 마다 수원지역의 활동가들과 기후위기 행동을 진행하고 있다. ⓒ 다산인권센터

   다산을 알게 된 지도 벌써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30주년을 맞이한 다산 앞에선 7년이 시간이 너무나도 작게 느껴지지만, 초등학생이던 나는 그 시간을 통과하며 어느덧 스무 살이 되었다. '스무 살은 잘 놀아야 해'라는 그 말마저 내게는 버겁기만 한데 다산은 어떻게 굳건히 30년 동안 자리를 지켜왔는지 그 앞에선 한없이 겸허해지기만 한다.

다산인권센터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2015년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수원 거리 행진을 한 어느 겨울날이었다. 그날 나는 당시 다산에서 활동하던 박진 활동가를 처음 보곤 마음속 깊은 어딘가 묵직하게 울리는 것을 느꼈다. 그 감정은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어떤 감정이었는데 그건 마치 내가 오래도록 찾아 헤매던 무언가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그날 이후 다산을 통해 처음으로 인권 활동가를 꿈꾸기 시작했다.

막연히 그런 꿈을 품은 채 다산의 소식을 챙겨보기만 했던 내게 다산과 깊은 인연이 시작된 건 2019년 늦가을이었다. 그해 여름 나는 공교육의 입시 위주 교육을 반대하며 고등학교를 나와 일명 학교 밖 청소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학교 밖 청소년으로 산다는 것은 너무나도 많은 설명을 요하는 동시에 돌아오는 답은 없이 그것보다 배로 많은 시스템의 공백을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었는데 그 속에서 어떤 무력감을 경험하며 방황하고 있을 무렵 인권을 주제로 강의를 하는 인권 공부방 '문득, 인권'을 만났다.

나이도, 직업도, 살아온 삶도, 그 모든 것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권이란 공통된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그 시간들은, 전혀 가보지 않은 세계를 마주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인권공부방이 끝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자원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다산에서 무얼 했나 이것저것 찾아보니 내 기억보다 꽤나 많은 일들을 다산과 함께했던 것을 알고 조금은 놀랐다. 내가 한 일들은 사무실 내 작은 업무부터 현장에 나가기까지 정말 다양했는데 모든 일들이 다 각별하고 기억에 남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아무래도 세월호 관련 활동이었다. 아주 추운 겨울날 청와대 앞에서 활동가들과 함께 피켓을 들었고, 2020년 여름부턴 수원 세월호 기록집을 제작 및 발간하였다. 비록 내가 한 일은 다른 활동가분들이 하신 것에 비하면 아주 작은 일들이었기에 이렇게 '했다'고 말하는 것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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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권센터는 인권의 목소리가 세상 곳곳에 울려퍼지도록 활동하고 있다. 전쟁을 반대하며 화성행궁앞에서 진행한 반전 퍼포먼스 ⓒ 다산인권센터



한국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세월호 참사 이후 어떤 무력감을 경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거듭되는 학생의 자리에서 그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계속해서 겪었다. 그 감정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되려 더 짙어져만 갔고 그때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또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오래도록 갈피를 잡지 못했었다. 그러다 마침내 다산에서의 시간을 통해서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 갈피를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다산은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고 싶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내게 방법을 제시해 준 최초의 공간이었다.

자원활동을 한 1년 남짓 한 시간 동안 활동가들과 함께 옹기종기 둘러앉아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수한 이야기를 나누고 때가 되면 분주히 제 할 일을 하고 필요한 곳에선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다산에서 매 순간 순간은 내게 너무나도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모든 날이 다 좋았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일 테다. 때로는 버겁게 느껴지도 날도 있었다. 인권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알아갈수록 앞으로 도대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되려 더 어려워지는 듯했다. 가끔은 현실을 비관하기도 하고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 이게 맞는 건지 끊임없이 나 자신을 의심하기도 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은 전염병, 기후 위기, 전쟁, 폭력, 빈곤, 증오, 차별 그 모든 것이 한데 뒤섞여 들끓고 있다. 그 어떤 때보다 일촉즉발이라는 말에 가장 잘 들어맞는 그런 시대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수업 시간에 말로만 듣던 반전운동이 전 세계 곳곳에서 전개되고 기후 위기 시대에서 나의 미래가 굳건할지, 길을 걷다 내가 죽임을 당하진 않을지 늘 불안감이 앞선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만으로 거듭되는 공포를 겪고 쉬이 절망에 빠지곤 한다. 그렇지만 희망을 향해 나아가려면 절망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 이게 바로 내가 다산에서 배운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다산에서 얻은 것은 그 희망을 향해 함께 나아갈 사람들과 힘이다. 내게 그 배움과 사람들과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산은 지난날이 그러했듯 묵묵히 30년 이상의 시간을 향해 또 나아가려 한다. 많은 것이 퇴색되어가는 오늘날 잊어선 안 되는 것이 있다고, 그냥 지나쳐선 안 되는 것이 있다고 지난날이 그러했듯 앞으로도 우리를 계속 두드려 줄 것이다. 그리고 더 큰 시간으로 나아가기 앞서 다산은 지금 공간 이전비와 활동비 모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주로 자원활동을 겨울에 했었던 나는 겨울날의 사무실이 얼마나 추운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더 빨리, 더 춥게 다가오는 것 같은 겨울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다산이 앞으로 나아갈 시간들은 더 따뜻하고 쾌적한, 모든 이들이 편히 찾아갈 수 있는 그런 곳에서 맞이할 수 있음 정말 좋겠다. 그러니 부디 앞으로의 펼쳐질 시간 앞에서 더 많은 분들이 다산의 손을 함께 잡아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다산이 두드려주는 문을 활짝 열고 환대할 것이다. 방황하던 내 손을 꽉 잡아준 다산과 계속해서 함께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김별은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이자 벗바리이다.
창립 30년을 맞이한 다산인권센터에서 공간이전과 활동비 마련을 위한 후원 모금을 진행한다. (https://dasan30th.modoo.at/)
#다산인권센터 30주년 #인권 #자원활동가 #세월호 #국정화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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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에는 양보가 없다는 마음으로 인권활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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