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스치어린 마나스치가 마나스 서사시를 암송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 대사관 제공
전통을 암송하는 마나스치
마나스 장군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키르기스 민족을 보호하였으며 뿔뿔이 흩어져있던 부족을 하나의 키르기스로 통일시킨 민족의 영웅이다. 마나스 서사시는 3부작으로 마나스와 아들 세메테이, 손자 세이테크(Kyrgyz epic trilogy Manas, Semetey, Semetek)로 이어진 마나스가의 영웅적 행적을 담은 이야기다. 이 3부작 서사시는 장편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합한 것보다 20배 이상이며, 인도인들이 자랑하는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보다도 2.5배 긴, 전 세계 구전 서사시 중 가장 분량이 긴 서사시라고 한다. 그 길이를 200자 원고지로 환산하면 4만 2천 장이 넘고 행간으로 환산하면 무려 50만 행이 넘는다고 하니 실로 어마 무시한 길이다.
이 마나스 서사시는 수백 년 동안이나 구전으로만 전해 내려오다 20세기 들어서야 문자로 기록되었으며 현재 80종이 넘는 버전이 전해지고 있다. 이 방대한 세계 문화유산(2009년 유네스코 지정 인류 무형문화유산)은 '마나스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낳았고 현재 키르기스스탄의 각급 학교와 대학교의 학과 과정에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교과목으로 편입되어 있다.
키르기스스탄에는 어려서부터 마나스 서사시를 외우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렇게 마나스 서사시를 암송하는 사람을 통상 마나스치(Manaschi)라고 부른다. 이를 더 세분하여 마나스치(Manaschi), 세메테이치(Semeteychi), 세이테크치(Seytekchi)라고 3부작 별로 구분하여 부른다. 이들은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저마다 동작이나 리듬, 독특한 소리 톤을 사용해 그 많은 양의 서사시를 무아지경으로 풀어낸다. 이들 마나스치들은 마나스를 구술하는 것을 하늘이 정해준 소명으로 믿고 있으며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그들의 정체성과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소명의식이 없었다면 13시간에 동안이나 암송해야 하는 일을 누가 하려고 했겠는가?
문화유산은 현재의 뿌리이며 미래의 징검다리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도 키르기스스탄의 마나스 서사시 못지않은 자랑스러운 무형문화재가 있다. 바로 판소리다. 한 편의 이야기를 고수의 장단에 맞춰 풀어내는 판소리와 마나스치가 암송하여 풀어내는 마나스 서사시는 비슷한 유형의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춘향가 완창의 경우 무려 8시간이나 걸리다고 하니 13시간이 걸린다는 마나스 서사시보다는 짧아 보이지만 결코 그 내용이나 작품의 완성도에서 떨어지지 않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길이로 비교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는 굳이 비교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키르기스 인들은 자신들의 전통으로 전해져 오는 문화유산을 자긍심을 갖고 교육과정에 의무로 편입시켜 놓고 있다는데 판소리 등 전통문화를 대하는 우리의 현재 모습이 비교되며 뭔 지 모를 부끄러움이 올라온다.
오징어 게임, 기생충, BTS, 블랙핑크 등 세계를 호령하는 K-문화가 자랑스럽다. 그 자랑스러운 K-문화의 뿌리는 우리의 전통문화유산임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문화유산은 현재의 뿌리이며 미래의 징검다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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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 자도 아니고 50만 행을 통째로 외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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