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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갈색 아침'을 맞이하고 싶지 않아요

이태원 참사를 마주한 지금, 필요한 그림책

등록 2022.11.09 13:22수정 2022.11.0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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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아침>을 처음 알게 된 건, 2014년이다. 그리고 한참을 잊고 살았다. 얼마 전 이 그림책이 다시 떠올랐을 때, 슬펐다. 이 그림책은 다시 생각나지 않는 편이 좋았다. 

<갈색 아침>은 프랑스의 교육자이자 소설가인 프랑크 파블로프가 1998년 처음 발표한 작품이다. 불의한 국가 권력에 침묵했을 때 어떤 일을 맞이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갈색 아침 표지
갈색 아침표지휴먼어린이
 
실제로 이 책은 2002년 프랑스 대선의 흐름을 바꿔놓았다고 한다. 2002년 대선 1차 투표 때 극우파 후보가 결선 투표까지 진출하자 프랑스 국민들은 충격에 빠진다. 이런 혼란 속에서 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갈색 아침>을 소개했고, 다음날부터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이 책이 프랑스 국민들의 마음을 흔든 결과 극우파 후보는 낙마했다. 이것이 바로 '갈색 아침 현상'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갈색이 아닌 개와 고양이는 모두 없애야 한다는 법이 생겼다. '나'는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이 키우던 고양이를 죽였다. 정부의 '갈색 법'을 비판하던 '거리 일보'가 폐간을 당했고, 시민들이 볼 수 있는 건 '갈색 신문'밖에 남지 않았다. 정부에 반대하며 '갈색'을 쓰지 않는 출판사들은 소송에 휘말렸다. '나'는 답답하고 불안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아 보여 침묵한다. 

사람들은 점점 모든 대화에 '갈색'이라는 말을 붙이며 법을 따른다. '나' 역시 '갈색 법'을 지키며 일상이 평화롭다고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갈색 옷을 입은 군인들이 '나'를 잡으러 온다. 예전에 키우던 고양이가 갈색이 아니었다는 이유에서다. '나'는 그제서야 후회한다. 처음 '갈색 법'을 만들었을 때 맞서지 않았던 것을. 모든 사람들이 조용히 살겠다고 그저 보기만 하는 세상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박상률 작가는 독일 나치 치하에 살았던 신학자 마르틴 니뮐러의 시를 소개하며 추천사에 이렇게 썼다.
 
나치가 유대인을 잡아갈 때 / 나는 유대인이 아니어서 모른 체했고
나치가 가톨릭을 박해할 때 /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서 모른 체했고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가둘 때 / 나는 당원이 아니어서 모른 체했고
나치가 노동조합원을 잡아갈 때 / 나는 조합원이 아니어서 모른 체했지
그들이 막상 내 집 문 앞에 들이닥쳤을 때 / 나를 위해 말해 주는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남이 박해를 당할 때 모르는 체하고 침묵 하면 결국은 나도 박해를 당하게 된다는 내용의 시입니다. 그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사람이 이미 아무도 없겠지요. 그러니까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독재자가 못살게 굴면 침묵하지 않고 저항합니다. 독재자에게 그런 사람들은 눈엣가시 같은 아주 성가신 존재입니다. 그래서 독재자는 자신의 손발처럼 부릴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잊지 않겠다는 말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이태원 참사 직후 교육부는 각 시도교육청에 "국가애도기간 중 불요불급한 교내 행사는 가급적 조정·연기를 검토하고 불가피한 경우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해달라고 단위 학교에 안내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수학여행과 노란 리본 달기를 금지했던 것과 판박이다. 현 정부가 그렇게 강조하는 '자유'는 어디에도 없다. 하라는 것, 하지 말라는 일만 잔뜩이다. 


2014년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과 마주했을 때 다짐했다. 절대 잊지 않겠다고, 기억하겠다고, 눈물을 흘리고 약속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세상에서 잊지 않는다는 약속이 무슨 소용인가. 그런 약속은 더 이상 할 수 없다. 아니, 하고 싶지 않다. 잊기 전에, 잊히기 전에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지고 책임자가 처벌받는 세상을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침묵하지 말고 요구해야 한다. 

<갈색 아침>에서 '갈색 법'에 불안함을 느꼈던 주인공 '나'는 점차 그 법에 적응한다. 다시 일상이 재미있고 편안하다. 갈색 동물을 키우며 법을 잘 지키는 자신에게 정부에서 칭찬이라도 해줄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다. 자신이 마주할 끔찍한 내일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나'는 불의한 국가 권력에 침묵하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한 채 일상의 편안함을 누리며 생각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향대로 순순히 따르기만 한다면, 언제까지나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갈색 아침>에서 주인공 '나'가 했던 말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말은 아닌가. 그렇다면 내일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하나뿐이다. 갈색 아침.
덧붙이는 글 이 글을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갈색 아침

프랑크 파블로프 글, 레오니트 시멜코프 그림,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휴먼어린이, 2013


#갈색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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