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전 <한국일보> 기자(왼쪽)와 한승헌 변호사가 17일 연극 <보도지침> 연습현장을 찾아 배우들과 제작진,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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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은 자유로운 언론을 적대한다.
전두환 정권은 쿠데타 직후 언론통폐합 등 언론계를 짓밟고, 172개 정기 간행물의 등록을 취소했다. 그리고 이른바 '보도지침'을 통해 전국 각 언론기관을 통제하였다.
5공 치하의 한국언론은 '보도지침'에 의해 조종당하는 '관제언론'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보도지침이란 전두환 정권의 문공부 홍보조정실에서 날마다 언론사 편집국(또는 보도국)에 은밀하게 시달리는 보도통제의 지침이었다.
1986년 9월 당시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기관지였던 <말>지에 바로 이 보도지침의 구체적 내용이 폭로되어 세상을 들끓게 하였다. 그 사건으로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 민언협 사무국장 김태흥, 실행위원 신홍범 등 세 사람이 구속되었다.
<말>지에는 1985년 10월부터 1986년 8월까지 약 10개월 동안의 보도지침이 날짜별로 자세히 수록되어 있어 정부로서도 달리 발뺌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도 전두환 정권은 도리어 그 폭로자를 구속했으니 완전히 적반하장격이었다. 죄명도 걸작이었다. 국가보안법ㆍ집시법 위반에다 외교상 기밀누설죄와 국가모독죄까지 첨가되었다. (주석 4)
한승헌은 고영구ㆍ조준희ㆍ홍성우ㆍ황인철ㆍ이상수ㆍ조영래ㆍ김상철ㆍ박원순ㆍ신기하ㆍ함정호 등과 변호인단을 구성하고 재판에 대처하였다. 7차 공판의 날 검찰의 논고가 끝난 뒤 변호인단의 변론이 있었다. 한승헌이 나섰다.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은 하기 전에 이미 결론이 나 있었다고 본다. 오늘의 보도지침 사건 심판의 대상은 보도지침을 폭로한 세 분의 행동이 아니라 보도지침 그 자체이며, 그것을 고안 활용해온 압제자들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남은 일이 있다면 집권세력이 국민 앞에 당장 그런 괴물을 없애는 결단을 내림으로써 개전의 정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이것은 보도지침을 통한 언론통제 그 자체에 못지 않은 죄악상이다. 비유컨대 이것은 불낸 자는 그냥 두고서 119에 신고한 사람을 잡아간 격이다. 아니, 불을 낸 자가 화재신고자들을 잡아다가 심문한 셈이 되었다.
방화와 소방의 업무를 맡은 자라면 화재신고를 한 사람에게 감사하고 뒤늦게나마 진화작업을 하고 화인을 규명하여 범인을 처벌했어야 한다. 그런데도 이 경우에는 외친 자를 구속하는 데만 급급했지 민주언론과 나라의 근본기틀을 불태우고 있는 악의 불길은 그대로 방치하고 있으니 개탄을 금할 수가 없다. (주석 5)
주석
4> 한승헌, <정부 '보도지침' 폭로를 '기미누설ㆍ국가모독'으로>, <실록(4)>, 283쪽.
5> 김태홍ㆍ신홍범ㆍ김주언, <5공의 언론통제에 대한 일격>, <실록(4)>,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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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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