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마디나씨가 2019년 한국관광공사 와우코리아서포터즈(Wow Korea Supporters)’ 활동을 할 때 받았던 기자증
고 마디나씨 SNS
다미라씨는 사고 직전인 10월 29일 밤 9시 47분께 마디나씨로부터 영상 메시지를 받았다. 다미라씨 휴대전화엔 아직 그가 보낸 영상 메시지가 남아있다. 자매는 평소에도 하루에 1~2회씩 통화할 정도로 우애가 깊었다. 다미라씨는 사고 당일 기억에 대해 현지 언론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마디나는 당시 친구를 만나고 있었고, 함께 저녁을 먹고 이태원 메인 도로를 걷기로 했다. 그런데 인파가 너무 많아 집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인파에 휘말렸고, 친구가 앞으로 밀쳐지며 둘은 헤어지게됐고, 친구는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이후 마디나의 친구가 의식을 찾은 뒤 주변을 돌아보았으나, 마디나는 보이지 않았고 이후 경찰이 도착했다고 한다. 친구는 '모든 게 문자 그대로 3초 만에 벌어졌고 무엇을 이해할 시간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가족은 사고 다음날인 10월 30일 카자흐스탄 영사의 전화를 받고 마디나의 사망 소식을 알았다. 항상 전화와 문자에 답장을 하던 딸이 갑자기 연락이 없자 어머니가 아침부터 딸의 안부를 묻기 시작했던 차였다. 영사는 아버지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시신 확인을 부탁했고, 아버지는 영상으로 누워있는 딸의 시신을 확인했다.
한국 정부가 외국인 희생자의 시신 운구 비용 등을 선제 지원하지 않아 금전적인 문제가 생기자,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직접 후원금을 모금했다. 이들은 마디나의 유류품을 모아 그의 관과 함께 화물기를 이용해 부쳤다. 마디나씨의 시신은 11월 3일 수도 알마티에 도착했다. 그리고 5일 고향 악토베에 도착했다.
유족은 무슬림 전통에 따라 그가 누워있는 관을 하룻밤 동안 그의 방에 놓아두었다. 유족과 친척들 모두 밤새도록 기도문을 읊었다. 그의 발인이 있었던 다음 날 아침에도 100여명의 조문객이 모여 기도문을 함께 읊었다. 마디나씨는 할아버지와 일가 친척들이 안장된 묘지에 함께 묻혔다.
유족 "매일이 고통... 사고 진상 알고 싶다"
"사랑과 웃음이 가득했던 내 동생... 매일 저녁마다 엄마와 함께 동생의 유류품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고통이 너무 큽니다. 마디나는 지난 여름 카자흐스탄을 깜짝 방문했었습니다. 그때 저는 동생을 한국에 다시 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6살 위 언니인 다미라씨는 그의 탄생과 첫 만남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밝혔다. 또 직접 동생에게 기는 법과 걷는 법과 가르치면서 함께 컸다고 했다. 다미라씨는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다미라씨는 "우리는 이 사건이 국가기관과 지자체가 그같은 규모의 행사에 시민 안전을 제대로 책임지지 않아 생긴 과실 범죄라고 생각한다"며 "긴급 대응을 해야 할 경찰도 너무 미흡하게 일했다"고 밝혔다. 그는 기자에게 "조금이라도 동생의 마지막 모습을 알고 싶다. 당시 길거리를 찍은 영상이나 사진이 공개된 것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친구 아디야씨는 목이 메이는 목소리로 "공평하지 않다. 그녀는 너무 어리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고,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 했다"라며 눈물을 보였다. 이어 "나와 마디나는 '한국은 안전하고 어떤 (위험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항상 말했었다"며 "(이태원 참사는) 한국 정부와 경찰이 그들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생긴 사고다. 한국 정부의 책임"이라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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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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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안전하다고 믿었던 카자흐스탄 유학생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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