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후 첫 주말인 5일 여러 시민과 외국인이 참사 장소 인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아 추모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소중한
안아무개(30·여)·강아무개(30·여)·김아무개(29·여) : <울산매일>·<울산제일일보>·<국민일보> 등에 따르면, 친구 사이인 강씨와 김씨는 결혼식 참석을 위해 서울을 찾아 또 다른 친구인 안씨와 함께 이태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세 사람 모두 참변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교사인 강씨는 최근 주택청약이 당첨돼 남자친구와 결혼을 꿈꾸던 중이었다. 강씨의 동생은 "누나가 다음 달 부모님께 남자친구를 소개할 예정이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강씨가 근무하던 학교의 관계자는 "밝고 좋은 선생님"으로 그를 떠올렸다. 서울에 온 두 친구를 맞이했던 안씨는 며칠 전에도 새로 이사한 집에 부모님을 초대했다. 안씨의 아버지는 "딸이 서울 구경을 시켜줘서 창경궁도 구경하고 광장시장에서 맛있는 것도 먹었다"며 침통한 심경을 토로했다. 안씨의 남편 역시 참사 직전 세 사람과 식사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임아무개(30·여) : <조선일보>·<머니투데이>에 따르면, 임씨는 최근 창업한 기업을 꼭 성공시키겠다며 큰 포부를 품기 시작한 청년이었다. 국내 특목고, 해외 명문대를 졸업한 후 대기업에 취업하며 "부모에게 걱정할 것 하나 없는 자랑스러운 딸"(아버지)이었던 임씨는 이태원 참사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말 한 마디 할 수 없었던 유족과 친구들은 침통한 마음으로 임씨의 관을 운구차에 실었다. 그를 기리는 조화엔 "◯◯아, 너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을 기억할게. 우리는 언제나 함께야. 고맙고 사랑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아버지는 "무남독녀 외동딸이 사랑스럽게 자라 이제 결혼시킬 일만 남았는데 이런 일이 일어났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아무개(30·남) : <경기신문>·<경인일보> 등에 따르면 한씨는 아버지와 둘도 없는 친구였다. 최근 배달요식업 사업을 시작해 밤낮없이 열심히 일해왔고, 사업이 잘 돼 아버지에게 옷과 구두를 선물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아들, 아빠가 많이 보고싶다, 꿈에 자주 나타나다오"라고 통곡했다.
김아무개(30·남) : <중앙일보>에 따르면 김씨는 병원의 방사선과에서 일했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방문했고, 여자친구는 가까스로 참사를 피했다. 어머니 홀로 김씨 누나와 김씨를 키웠다고 한다. 김씨 부모의 지인은 "친누나가 최근 뉴질랜드에 들어와서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다"고 전했다.
정아무개(30·여) : <서울신문>·<문화일보> 등에 따르면 정씨는 독립해 살고 있었지만 매일 아버지와 메시지를 주고받던 딸이었다. 참사 당일 아버지가 저녁을 먹자고 했으나 친구와 선약이 있어 만나지 못했다. 정씨는 아버지의 사업을 돕기 위해 유학을 포기하고 국내에서 카페를 운영했다.
최아무개(32·여) : 헤어디자이너로 일했던 최씨는 얼마전 '실장'이 됐다. <한국일보>·<문화일보> 등에 따르면, 최씨는 미용 관련 학과에 입학해 수습기간 3년을 버텨 지금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최씨 여동생은 "언니가 특히 밝은 성격이었다"고 전했다. 최씨는 세 남매 중 첫째다. 큰 딸 최씨와 셋이 살고 있던 부모님에게는 최씨의 빈자리가 더 크다. 아버지는 "어렸을 땐 제가 엄했는데 커서는 저녁에 맥주도 자주 먹는 친구 같은 사이였다"고 말했다.
OOO(33·남) : <뉴시스>에 따르면, 그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했다. 여자친구와 이태원에 갔다가 변을 당했다. 그의 여자친구도 함께 세상을 떠났다.
OOO(34·여) : <전북도민일보>·<노컷뉴스> 등에 따르면, OOO씨는 세 자매의 첫째 언니였다. 유족들은 이태원 참사 다음 날인 30일 오후 6시에야 사망 소식을 접했다. 30일 새벽 1시께 이미 실종신고를 했지만 사고로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위치추적이 늦어졌다. 그는 국립중앙의료원 영안실에서 꼬박 12시간이 넘게 있었다. 그의 둘째 동생은 "장례를 하루밖에 못 치르는 게 말이 되냐"라며 "차가운 곳에 언니가 외롭게 남겨졌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그의 동생은 "세 자매는 티켝태격하며 잘 지내왔다"라며 "진짜 솔직하고 정많은 사람인데 우리 언니 없으면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하염없이 울었다.
서아무개(34·남) : <조선일보> 등에 따르면 서씨는 아버지와 매일 영상통화를 하던 살가운 아들이었다. 최근 취업 준비에 매진했다고 한다. 백발의 아버지는 아들 영정 사진 앞에서 "아들아, 아들아,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아들아"라며 낭독하다 말을 잇지 못했다.
[40·50대 희생자] 빈소의 노모, 빈소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