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커
픽사베이
몇 년 전 지인들과 연말파티에서 카나페(네모난 과자 위에 다양한 재료를 올려 먹는 것)를 만들겠다며 마트에 갔다가 크래커에 돼지고기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유행을 따르는 특정한 향과 맛을 가미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납작하고 바삭한 네모난 과자다. 빵에 우유, 버터, 치즈와 같은 유제품이 들어가는 경우는 흔해도 스낵에 고기를 넣는 일은 어떤 식감과 공정 과정의 이유로 들어가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었다(부드러운 빵 종류에 소의 지방에서 얻은 기름인 '우지'가 사용된다고 한다). 심지어 야채크래커에도 소고기가 들어간다. 이름에 충실하면 좋으련만 왜 자꾸 뭘 더하지? 그렇게 뭔가 더 주고 싶다면 동일 가격에 양을 늘리는 건 어떨까란 생각에 야속해진다.
채식을 하고 싶어도 돈이 너무 많이 들기에 선뜻 엄두내지 못한다는 개인의 경제적 배경들이 존재한다. 이론상 무언가(여기서는 육가공류)를 요리에 '더하기'보다 덜어내는 것이 비용이 낮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버거집에 가서 메뉴판을 보는데 육류가 들어간 버거는 7유로였으나 콩패티가 들어 간 비건 버거는 9유로여서 억울했던 적이 있다. 아무리 축산업이 대형공장식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생명을 먹이고 재우고 키워 그것을 가공하는 일이 농작물을 키우는 것보다 비용이 더 저렴하다니 어딘가 이상하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 이렇게 싼 값에 쳐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고기 반찬을 내거나 한우를 선물해야지만 대접다운 대접을 했다는 풍습도 있다. 아주 오래 전 문명에야 직접 집(농장)에서 애지중지 기른 가축을 보답이라며 선물하는 때가 있었다지만 왜 유독 현대사회에서는 여전히 '고기'만을 부의 상징으로 쳐주는 걸까? 이렇게 빈부가 발생하는건 비단 '육식'에서만이 아닐 것이다.
명절마다 들어오는 햄 세트가 어릴 때야 짭쪼름하니 밥에 다른 반찬 없이 얹어 먹기 편해 좋아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었다. 언제부턴가는 일 년 내내 부엌 한 켠에 햄 통조림이 쌓여갔고 육식을 그만 둔 이후로는 그야말로 처치 곤란이어서 이웃에 나눠주기 바빴다. 분명 반갑게 받아야 할 '선물'인데 넘쳐나는 것이 그것뿐이어서 이것이 일부 기업들의 명절 선물 시장 독점 때문인지 상상력의 부족인지 질문하게 했다.
'비건'인 불닭볶음면
런던에서 살 때 재밌었던 풍경 중 하나는 집 앞 마트 가판대에 불닭볶음면 수백 개가 전시된 것이었다. 5개에 4.99파운드로 짜장, 까르보나라, 라이트 등 모든 종류가 빠짐 없이 입점돼 있었는데 심지어 아시아마트도 아니었다. 유튜브를 통해 많은 외국인이 이 제품의 맵기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 도전하는 영상들을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까지 광풍일 줄은 몰랐던 차.